29일 개봉될 ‘퍼펙트 스톰(The Perfect Storm)’은 이전의 영화들에서 볼 수 없던 무시무시한 바다 폭풍으로 모든 것을 다 말하는 재난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산처럼 일어선 파도와 검은 입을 벌리고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바다는 보는 이의 다리 힘을 쭉 빼놓는다. 이야기 구성과 캐릭터 묘사에 허점이 많은 영화이지만 허리케인의 한 가운데로 관객을 내동댕이치는 듯한 실감을 자아내는 특수효과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에 ‘패트리어트’를 제치고 흥행 1위에 오른 이 영화는 세바스찬 융거가 쓴 같은 제목의 소설이 원작. 1991년 대서양에 불어닥친 사상 최대의 폭풍과 이에 맞서 싸운 어부들의 실화를 토대로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항구도시 글루체스터. 어선 게일호 선장 빌리(조지 클루니)는 실적이 낮다는 선주의 질책에 화가 나, 풍요한 어장이지만 위험한 그랜드 뱅크에 출항할 결심을 한다. 이혼소송 수임료를 다 갚지 못했어도 사랑하는 크리스(다이앤 레인)와 새출발하고 싶은 가난한 어부 바비(마크 월버그)도 돈을 벌기 위해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게일호에 탄다.
바다에 나간 이들은 허리케인과 다른 두 개의 기상전선이 충돌하면서 형성된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폭풍을 만나 사투를 벌인다. 악마의 손안에 든 장난감처럼 폭풍우에 휘말린 배가 요동치고, 어선과 비슷한 시기에 유람 여행을 나온 요트 승선자들을 공군 헬기가 구조하는 장면 등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러나 ‘특전 U보트’에서 폐쇄 공간 속 인물들의 심리적 강박을 빼어나게 묘사한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이번엔 인물들의 관계와 내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선원들의 갈등은 쉽게 봉합되고 돌아오라는 교신까지 무시해버린 빌리 선장의 독단에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다. 조지 클루니를 비롯한 선원들의 연기는 좋지만, 눈물겨운 연인이어야 할 다이앤 레인의 연기는 너무 건조해 속수무책으로 연인의 무사귀환만을 기다리는 절박함을 전달하는데 실패했다. 대사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각본의 문제도 크다.
거대한 수조에 실물 크기 배를 넣어 촬영하고 특수효과로 다듬은 현대영화의 디지털 기술이 리얼리티는 높였지만 눈물겨운 아날로그적 감동까지 살려내는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12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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