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3명은 올해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동년배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들은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내용을 배웠다. 생활 습관이나 사고 방식에도 큰 차이가 없을 나이이다.
그러나 컴퓨터로 인해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계층간의 지식격차로 사회갈등이 우려되는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7월20일 서울의 구정중 3학년5반에 재학중인 김가흔군(강남구 압구정동)은 오전 8시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부팅한 다음 종합 포털 사이트 ‘드림위즈’로 들어갔다. 이곳에 마련된 구정중 동호회를 찾아 친구들의 글을 읽었다. 방학중이지만 컴퓨터로 학우들과 매일같이 연락을 하고 있는 것이다. 라디오가 아니라 컴퓨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모르는 단어는 전자사전 프로그램으로 찾는다. 종이 사전을 펴본 지 오래 됐다. 가흔이는 이날 4시간을 컴퓨터와 함께 보냈다.
같은 시간 전북 완주군 구이중에 다니는 홍두리양(구이면)은 TV를 보고 있었다. 앙코르 환경시리즈 등이 방영되는 시간이다. 오후에는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었다. 컴퓨터를 활용하고 싶은 충동은 많이 느끼지만 주변에 하드웨어가 없어 엄두도 내지 못 한다. 전주 시내로 나가면 PC방이 있지만 너무 번거롭다.
강원 춘천시 남춘천중에 다니는 민명기군(가명·춘천시 온의동)은 컴퓨터광이다. 다만 하드웨어의 용량이 부족해 인터넷 등에 애로를 겪고 있다. 사업을 하는 삼촌집에 가면 문제가 없다. 20일에는 두 시간 동안이나 친구와 채팅을 했다. 이 세 스토리는 동아일보가 각 지역을 돌며 방학을 맞은 중학생들의 생활을 직접 취재한 것이다. 같은 나라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동년배의 학생들이지만 이들의 방학 생활은 너무나 달랐다.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마치 서로 다른 나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학생들의 컴퓨터 이용시간은 서울 구정중이 평균 4시간이었다. 남춘천중은 2시간. 그리고 완주 구이중은 30분 남짓이었다. 특히 구이중에는 아예 컴퓨터와 담을 쌓고 사는 학생도 수두룩했다.
경영정보학을 전공하는 고려대의 한재민 교수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요즈음 세계 정보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디지탈 디바이드’의 전형적인 예”라고 설명한다. 한 교수는 “정보화 초기 단계에는 통심모뎀들의 보급으로 지구 촌이 더욱 가까워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최근들어서는 오히려 정보화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면서 “디지탈 디바이드를 극복하지 못하면 계층간의 갈등과 소득격차가 더욱심화되어 사회안정을 해칠수 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보화를 하지 않은 것보다 더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안중호 교수는 “ 미국은 이러한 디지탈 디바이드를 예방하기위해 고어 부통령이 취임하던 1993년부터 연방정부 예산을 대거 투입해 50개주 전지역에 초고속 망을 깔아 놓았다”면서 “우리도 이제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할 때” 말했다. 안 교수는 “정보화격차해소는 올해 선진8개국 정상회의(G8)에서도 핵심의제로 채택되어 있다면서 ”인프라뿐 아니라 저소득층에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방안도 연구해보아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정보통신부의 변재일 정보화기획실장은 “문제제기를 해주어 고맙다‘면서 ”격차해소를 위해 올해말까지 전국의 모든 학교에 컴퓨터 교실을 열고 무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연말까지는 군 단위지역에서도 초고속 정보망을 깔 계획이라고 변 실장은 밝힌다.
<이병기·정영태·김승진기자>eye@donga.com
▼디지털 다비이드▼
정보의 격차로 인한 사회계층의 단절을 의미하는 말. 영어로는 Digital Divide로 표현된다. 디지털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계층은 지식이 늘어나고 소득도 증가한다. 이에 반해 디지털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혀 발전하지 못해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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