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오광수/예술魂 이끌어온 신문 80년

  • 입력 2000년 7월 26일 18시 36분


빛 바랜 신문 지면을 다시 대하게 될 때, 우리는 지난 역사의 흔적과 일상의 낡은 기억들을 반추하게 된다. 늘 새로운 뉴스를 전달하는 것을 사명으로 태어난 신문은 그래서 역사와 일상의 명징한 거울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활자문명이 우리 인류사에 끼친 많은 변화 중에서 신문만큼 시대를 대변해 왔고, 예술과 문화를 대중을 향해 확산시킨 대상을 찾기란 그리 쉽지가 않을 것이다.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광화문 139번지:신문과 미술 80년전’은 신문매체와 미술활동의 관계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전시다. 우리의 근대미술과 신문의 관계는 거의 비슷한 시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된 것이 1920년대 초이며 근대적 성격의 미술활동 역시 20년대 초에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지면에 등장하는 미술기사와 익명의 미술비평은 다분히 계도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 언론에 관계하던 많은 문사(文士)들이 미술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교양인으로서의 인상비평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20년대 후반에 본격적인 전문비평이 시도되면서 이른바 살롱비평이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 근대미술비평은 살롱평에서 시작된다. 신문을 매개로 해서 근대미술비평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0년대와 30년대 신문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 외에 활발한 논쟁의 마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프로미술 논쟁, 향토색 논쟁은 시의적인 담론의 성격도 띠고 있으나 미술에 있어서 근대적 역할에 대한 근원적 문제와 우리 고유성에 대한 문제제기였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특히 조선 향토색 논쟁은 현대에 있어서도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 한국적인 것은 없다, 있다는 논의는 오늘날에도 뜨겁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향토색과 관계지을 수 있는 것으로 동아일보가 전개했던 브나로드운동을 들 수 있다. 농촌계몽을 통해 잊혀져 가는 민족의식을 일깨웠던 이 운동은 미술과 문학에 직접적으로 반영돼 미술에 있어서의 향토색 범람과 문학에 있어서의 농민소설, 귀향소설을 낳게 했다. 이광수의 ‘흙’, 이기영의 ‘고향’, 심훈의 ‘상록수’, 이무영의 ‘먼동이 틀 때’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신문과 현대미술운동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언론의 활발한 지원이 없었더라도 우리의 현대미술운동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현대미술은 언론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1957년에 출범한 조선일보의 현대작가초대전과 1970년에 처음 열린 동아일보의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한국일보의 한국미술대상전은 국전의 아카데미즘에 대항한 재야전으로서, 최초의 국제전으로서 우리 미술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다. 이를 계기로 80년대에 들어오면서 동아일보의 동아미술제, 중앙일보의 중앙미술대전 등 대규모 민전이 열리게 됐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처럼 언론과 미술이 밀착된 예도 흔치 않을 듯하다.

‘신문과 미술 80년전’은 이같은 신문과 미술의 관계를 여러 측면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전시회는 동아일보와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그리고 다양한 미술 행사의 영향 속에서 성장한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신문의 지면도 변화해 왔다. 오늘날에는 지면이 엄청나게 늘어나 한층 볼거리가 많아졌다. 그러나 4면이나 8면 체제였던 1950, 60년대 지면에서도 알찬 볼거리들이 많았다. 보고는 아무데나 버려버리는 오늘의 신문이 아니고 부분 부분 오려서 스크랩을 해놓아야 하는 내용들이었다.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고 교과서이기도 했다. 많은 교양을 신문을 통해 습득했다. 시와 컷이, 단문과 그림이 실리는 문예란이 기다려졌던 시대였다.

이제는 그런 것을 신문지면을 통해 엿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광화문 139번지:신문과 미술 80년전’은 지면을 통해 발표됐던 또 하나의 형식이랄 수 있는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자 어제의 신문과 미술의 관계를 음미해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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