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설은 기본적으로 현대그룹이 자금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데서 비롯됐다. 정주영씨의 3부자 퇴진 등 대국민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현대특유의 후진적 경영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시장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요건들이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이번에 고비를 넘기더라도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구조조정을 확실하게 추진하지 않는다면 같은 상황이 재발될 수밖에 없다.
현대건설의 재무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악성루머에 현혹돼 서둘러 자금을 회수한 일부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불이익이 주어져야 한다. 구조조정을 앞둔 금융기관들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외국 은행들의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 금융기관들의 수준 낮은 정보분석능력과 이기주의적 태도는 실망스럽다.
이헌재 재경부장관이 “현대건설을 워크아웃 또는 법정관리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발언한 직후 시장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부의 권위상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금융시장이 당국자들의 말과 반대로 가야 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정부가 이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정책을 집행하고 감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현대가 결코 제2의 대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정부의 대우처리 방식이 옳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처럼 대가가 큰 교훈은 한번으로 끝내는 것이 좋다. 물론 상황은 대우사태 때와 다르다. 수익성도 현대그룹이 붕괴할 만큼 나쁜 것도 아니다. 따라서 현대위기설이 순환과정에서 과장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정부가 금융시장 상황을 낙관적으로 말하는 근거들이 얼마나 객관성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뜻은 이해가 가지만 워낙 변수가 많은 금융시장에서는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당장 현대로 인해 빚어진 자금시장의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일이다. 근본적인 시장치유방법은 역시 금융권에 대한 구조조정뿐이다. 금융구조조정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날 정부의 추진의지만으로도 금융시장의 안정은 조기에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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