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동국대 교수·북한학)
북한은 전통적으로 ‘반제(反帝)’와 ‘자주(自主)’의 기치 아래 외교정책의 목표를 북한 자체 보존과 경제 발전, 그리고 국력 신장에 두면서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공산화 통일에 그 최종 목표를 두어 왔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와 환경에서 어떻게 사회주의 체제와 김일성―김정일정권의 존속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그들의 최대 정책 목표가 됐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북한 당국은 첫째, ‘우리식 사회주의’론의 제시를 통한 북한 주민들의 신심(信心)의 동요를 막으며 둘째,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체제 수호와 대외 협상 카드로 활용하며 셋째, 자본주의 세계 체제로부터의 ‘수혈’ 또는 ‘편입’을 통한 생존을 모색해 왔다.
이런 생존 전략에 따라 탈냉전 이후 최근까지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외교는 북―미 직접 협상을 통한 체제보장외교, 시급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식량확보외교, 그리고 구조적인 경제난 해결을 위한 투자유치외교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체제 보장, 식량 및 경제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외교 전술로 ‘위기조성전술’을 구사해 왔다.
그리고 조성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과정에서는 ‘벼랑끝 외교’를 통해 현안의 일괄 타결을 시도해 왔다. 북한은 이러한 외교 전술을 통해서 북―미 기본합의와 대량 식량 지원 확보 등 외교적 실리를 챙기긴 했지만, 구조적인 경제 위기를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김정일정권은 수많은 북한 주민이 굶어 죽은 연후에야 핵 미사일 개발과 전쟁불사 위협 등 위기 조성 전술이 더 이상 ‘협상용 지렛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9월 대포동 2호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유예를 약속한 베를린 북―미 고위급회담이 타결된 이후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제54차 유엔 총회에서의 활발한 외교 활동을 시작으로 이탈리아와의 수교 및 유럽연합(EU) 국가들과의 외교 교섭, 호주와의 외교 관계 재개 등 활발한 ‘전방위 외교’를 펼쳐 왔다.
그러나 남한 당국을 배제한 가운데 추진했던 서방과의 관계 개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북한은 김대중정부의 일관된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베를린 선언에 호응하는 차원에서 기존의 남한당국 배제 정책을 수정해 남북정상회담에 호응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에는 다각적인 접촉과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말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린 데 이어 26일에는 태국 방콕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중인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과 백남순(白南淳)북한 외무상의 첫 남북외무장관회담이 열렸다.
같은 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는 권병현(權丙鉉)주중 한국대사가 태극기를 단 승용차를 타고 처음으로 북한 대사관을 방문, 주창준(朱昌駿)북한대사를 만났다.
그리고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에서는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리기로 돼 있다. 실로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할 만큼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방콕에서 이뤄진 첫 남북외무장관회담은 ‘상견례’ 수준의 회담이었지만 상호 관심사를 밝히고, “남북공동선언을 바탕으로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대외관계와 국제무대에서도 상호 협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공동 발표문을 채택했다. 공동 발표문의 내용은 1992년 2월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내용과 일치한다. 기본합의서 제22조에 의하면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상대방의 이익을 존중하며 민족의 이익과 관련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긴밀히 협의하고 필요한 협조 조치를 강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번 남북외무장관회담을 계기로 국제무대에서의 남북기본합의서 이행 체제가 구축됐다고 볼 수 있다. 국제무대에서 시작된 기본합의서 이행 체제를 국내적으로 정착시키게 되면 남과 북은 소모적인 체제 경쟁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 공동 번영을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진하기자>j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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