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e컬처]사이트마다 다국적 귀신들

  • 입력 2000년 7월 27일 18시 59분


해마다 이맘때면 방송과 영화가에서는 귀신이야기, 공포물 등을 소재로 한 납량특선을 내놓기 마련이다. 인터넷도 예외가 아니다. “공포 스릴러의 전율은 당신의 심장 박동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자, 클릭을 결정하십시오….” 이런 경고성 문구와 함께 으스스한 분위기의 호러음악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홀로 앉아있는 자신을 감싼다. 그날 밤 더 이상 더위는 없다.

◆사이트마다 다국적 귀신들

다소 애교스런(?) ‘귀곡산장’ 사이트(galaxy.channeli.net/cposon)와 섬뜩한 ‘떠도는 넋’ 사이트(www.ghost.oo.co.kr)에서부터 음산한 동영상 이미지가 가득한 ‘호러월드’사이트(www.horrorworld.pe.kr)와 클릭할 때마다 모니터 화면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귀신이 숨쉬는 곳’ 사이트(my.dreamwiz.com/yohiki)에 이르기까지 여름밤을 오싹하다못해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한 사이트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애시당초 클릭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지 모른다.

본래 한국판 귀신이야기에 나오는 귀신은 인간적인 면이 강해서 원한을 풀어주면 물러가고 때로 설득과 화해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심지어 귀신이 산 사람을 도와주기도 한다. 즉 전통적인 한국판 귀신이야기들은 한결같이 ‘권선징악’의 규범적 기준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국판 귀신이야기의 고전이라고 해야 할 ‘장화홍련전’에서부터 텔레비젼 프로그램으로 장수를 누리며 한국판 귀신이야기의 집대성을 이룬 ‘전설의 고향’에 이르기까지 우리 전통 귀신의 모습은 한결같이 인간적이며 권선징악의 화신들이다.

그러나 홍콩영화의 ‘강시’, 일본 만화의 ‘요마’, 할리우드영화의 각종 기괴한 공포물 등 해외판 귀신들이 대거 국내로 유입되면서 우리 고유의 인간적이고 친밀감마저 느껴질 만큼 소박했던 귀신과 도깨비문화는 사라지고 대신 잔혹하고 처참하며 전혀 개운하지 않은 다국적 귀신문화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이런 귀신문화 탓인지 인터넷 안에서도 전통적인 한국판 귀신이야기와 국적불명의 잡다한 귀신이야기가 혼재한다. 앞서 언급한 ‘귀곡산장’과 ‘떠도는 넋’ 사이트가 한국판 귀신이야기의 인터넷 버전이라면 ‘호러월드’와 ‘귀신이 숨쉬는 곳’ 사이트 등은 다국적 귀신이야기의 인터넷판이라고 하겠다.

한편 ‘영혼의 도시’ 사이트(galaxy.channeli.net/tnsdl/)에 들어가면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겪었거나 들었거나 각색한 귀신이야기, 영혼이야기, 미스터리 등을 게시판 형식으로 써올린다. 그런데 인터넷에 오르는 귀신이야기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학교괴담이다. 각종의 학교괴담은 억눌린 학생들의 욕망이 굴절되어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귀신이야기가 학생들에게는 학교라는 억압적인 집체적 울타리를 비집고 나와 숨통을 트는 또 하나의 도피적 틈새이자 억눌린 욕망의 분출구인 셈이다.

◆학교괴담 통해 욕망 분출도

사회심리학적인 의미에서 귀신이야기는 항상 그 집단 내의 소통부재의 지점에서 나온다. 말문이 막히면 죽어서 말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학교괴담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그만큼 학교현실이 학생들에게 여전히 답답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도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오는 것 같다. “나∼, 지금 떨고∼ 있니?”

다음회 주제는 ‘여름철 별자리 여행’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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