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고 으시대기]혜능 '육조단경(六祖壇經)'

  • 입력 2000년 7월 28일 14시 14분


◆"흔들리는 것은 바로 그대들 마음"

어느 절에서 법사(法師)가 경전을 강의하던 중, 바람이 불어와 당간(幢竿)에 걸린 깃발이 펄럭였다. 그걸 보고 한 스님이 "바람이 흔들린다"고 하자 다른 한 중이 "깃발이 흔들린다"고 반박했다. 거기 모인 대중들도 의견이 둘로 나뉘어 논쟁이 시끄러워졌는데, 이때 한 사람이 나서서 일갈했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바로 그대들 마음이다!"

이 이야기가 선종(禪宗) 역사상 유명한 풍번문답(風幡問答)이며, 일갈한 사람은 《선가귀감》의 저자이자 선사상사(禪思想史)에서 가장 비중 있는 선사(禪師) 육조혜능(六祖慧能)이다. 오늘날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선(禪)은 혜능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서, 일본을 통해 현재 전세계에 보급돼 있는 선은 혜능의 선사상과 선수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혜능의 출생지는 당나라의 영남(嶺南) 신주(新州)로서, 그곳은 예로부터 유배지로 고전적 전통문화가 열매맺은 곳이다. 영남의 오랑캐라고 불리는, 이름도 없는 천한 백성의 자식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문자의 교양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경전의 연구 따위와는 대체로 인연이 먼 환경에서 자라난 거친 무식장이었다. 그는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땔나무를 팔면서 생계를 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손님이 읽는 《금강경 金剛經》을 청해 듣고서 불법(佛法)에 뜻을 세우고 중국 선종의 오대조사(五代祖師)인 홍인을 찾아간다. 부처 되는 법을 구해 찾아왔다는 혜능에게 홍인은,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하며 마음을 떠보는데, 이때 혜능은 이렇게 답하여 홍인의 주목을 얻게 된다.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홍인은 그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고 방앗간에서 쌀을 찧도록 하여 혜능은 노동생활을 하면서 불법을 닦는데, 이는 종래의 전통적인 명상수행과 전혀 다른, 일개 보잘것 없는 세속인의 몸으로서 하는 생활불법의 발견을 의미한다.

◆육조대사가 되기 위한 과제, 신수와의 게송 대결

홍인은 법을 전수할 때가 되자 제자들의 수준을 알기 위해 게송(偈頌)을 지어 올리라고 한다. 홍인 문하의 700수행자의 선배인 신수(神秀)는 '마음은 대상세계를 비추는 밝은 거울과 같으니 먼지가 끼지 않도록 때때로 닦아야 한다'는 내용의 게송을 올리고 혜능은 '마음은 주관과 객관의 분리를 넘어선 깨끗함 그 자체이니 먼지가 낄 곳이 없다'는 내용의 게송을 올린다. 홍인은 혜능을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고, 비밀리에 법과 가사를 전수해 육대조사(六代祖師)로 삼은 다음, 사람들의 해침을 피해 남쪽으로 가길 권했다.

혜능은 676년 남쪽으로 가서 교화를 펴다가 조계산에 들어가 정혜불이(定慧不二 : 마음의 안정과 지혜의 활발한 작용은 둘로 구분될 수 없는 하나임)를 설했다. 이것은 좌선(坐禪)보다 견성(見性)을 중시했으며, 점차로 마음을 닦아 깨칠 것을 가르치는 동문 선배 신수의 북종선(北宗禪)에 대립하는 것으로 각자가 본래 갖춘 부처 성품을 단박에 봐 단계를 거치지 않고 부처가 되도록 가르치는 남종선(南宗禪)의 가르침이었다.

이 때문에 달마(達磨) 이래로 비밀스럽게 전수되던 선이 중국 전역에, 그것도 서민층에까지 퍼졌다. 불법을 숭상하던 측천무후(則天武后)와 당나라 황제가 혜능을 여러 번 초청했으나 거절하고 남방에만 머물렀다. 혜능의 저서로는 《육조단경》 외에 금강경을 풀어쓴 《금강경해의 金剛經解義》가 있다.

혜능은 달마와 함께 중국선(中國禪)의 거장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달마가 중국 선종(禪宗)의 전설적 시조라면, 혜능은 중국적 선의 기틀을 실질적으로 세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혜능의 선사상은 '좌선(坐禪)보다 '견성(見性)'을 중시하고 '점수(漸修)' 대신 '돈오(頓悟)'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며, 그 점에서 '점수(漸修)' 쪽에 가까운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과 구분해 남종선(南宗禪)이라 불렀다. 혜능의 사상은 이후 중국 선사상의 중심이 됐다. 한국 선종은 모두 남종선에 속하며 따라서 혜능에 대한 이해는 바로 한국 선종에 대한 이해와도 직결된다.

◆혜능사상의 독특함

혜능 사상의 독특성은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 본래의 수행법을 변형시킨 데에 있다. 석가모니는 인생 전체가 고통이고 인간의 심리작용 전체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먼저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그 고통과 사악함의 정체를 잘 관찰하면서 팔정도(八正道)를 닦아 영원한 행복인 열반을 성취하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혜능은 이와 반대의 순서로 영원한 행복과 깨끗한 지혜가 사람의 마음 안에 본래 갖춰져 있다는 것을 먼저 가르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같은 사악함에 물들지 않는 마음자리(心地)와 성품(性)을 봄으로써 열반을 성취하라고 가르친다.

석가모니가 설법한 내용 안에 혜능의 사상이 이미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석가모니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상(無常)하고 괴롭고(苦) 실체가 없고(無我) 더러운(不淨)' 심리작용을 먼저 철저히 보게 해, 그럼으로써 '영원하고(常) 즐겁고(樂) 실체가 있고(我) 깨끗한(淨)' 마음의 차원을 보게 방법을 주로 권했다. 하지만 혜능은 그 반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하고 즐겁고 실체가 있고 깨끗한' 마음의 차원을 먼저 보게 하고, 그럼으로써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고 더러운' 심리작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했다.

석가모니가 가르친 대로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고 더러운' 심리작용과 인생의 정체를 명료하게 관찰하고 파악하기 위한 수행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좌선(坐禪)'과 '관법(觀法)'인데, 이와 반대로 '영원하고 즐겁고 실체가 있고 깨끗한' 차원의 마음과 인생의 정체를 명료하게 보는 수행법이 바로 혜능이 강조하는 '견성(見性)'이다.

◆내용

《육조단경》은 선종(禪宗) 제6대 조사인 혜능이 소주(韶州)의 대범사(大梵寺)에서 설법한 내용을 제자 법해가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앞 부분은 혜능이 불도(佛道)를 이뤄 오조(五祖) 대사인 홍인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육조(六祖)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고, 그 다음부터는 여러 주제에 대한 혜능의 설법이 이어진다.

혜능의 설법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수행자들에게 자기 마음 속의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그 정체를 여실히 관찰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자기 마음이 넓고 커서 산하대지(山河大地)를 포함하고 있고 모든 이치와 불법(佛法)이 이미 자기 성품 안에 갖춰져 있다는 것과 부처의 지혜를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지만 다만 마음이 미혹해 스스로 모르고 있음에 눈뜨라고 권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광대한 지혜와 깨끗하고 행복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도 헛된 생각과 기억들이 마음을 덮고 있어 미혹이 있지만, 스스로 노력하든지 아니면 스승의 도움을 받아서 마음을 덮고 있는 망상과 나쁜 기억들을 없애 버리면 일시에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일단 깨끗한 성품이 드러나면 마음은 모든 기억과 집착으로부터 독립해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면서 자유자재로 활동하게 된다.

고명선<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 /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 http://www.bookcosm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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