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에 태어난 저는, 당시까지만 해도 따분한 교훈이나 잔뜩 겁 주는 훈계 이야기에 짓눌려 있던 아이들에게 자유롭고 즐거운 환상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지도, 무게 잡으려 들지도 않아요. 캐럴 아저씨는 그저 앨리스가 즐거워하기만을 바라면서 기발한 인물과 사건들을 만들어냈지요.
하지만 제 이야기는 그런 재미 외에도 굉장히 풍성한 철학적, 심리적, 사회적 숨은 뜻을 갖고 있대요. 수많은 학자들이 저를 붙들고 암호 풀듯 씨름하는 걸 보면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뭐, 제 얘기가 성장과 자기성찰, 자기확인에 관한 이야기라나요? 또 당시의 문학과 교육과 사회를 비꼬는 예리한 풍자문학이라나요? 20세기의 형식 파괴 문학, 의식의 흐름 문학을 예견하는 작품이라는 평도 있고요. 말과 논리를 가지고 절묘하게 장난치는 넌센스문학이기도 하대요. 와! 어마어마하죠?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제가 솔직하다는 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예의바르게 굴고 싶어하지만 워낙 호기심도 많고 깜빡 잊기도 잘해서 남의 마음 상하게 하는 때가 여러 번 있다는 거 숨기지 않잖아요? 눈물 연못에 빠진 쥐나 쐐기벌레한테 하는 거 보세요. 남의 말에 톡톡 끼어들기도 잘하구요. 앞뒤 안 재고 불쑥불쑥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 곤란하게 만들기도 해요. 정말 제가 제 자신을 어쩔 수가 없다구요.
하긴, 그렇게 어린아이다운 특성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게 제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본능적인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이상한 나라에 뛰어든 덕분에 이 멋진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세상은 따분할망정 나름대로 꿈을 꾸면서 재미있고 즐거워 어쩔줄 몰라하는 재주, 그거야말로 우리 아이들만의 능력과 특권 아니겠어요? 제 이야기를 읽는 아이들이 모두 그 능력과 특권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 뭐, 정 원하신다면 조금 나눠 드릴게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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