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살아있다 6]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입력 2000년 7월 28일 18시 36분


저는 앨리스예요. 엉겁결에 토끼를 따라 이상한 지하 나라로 들어갔다가 엎치락 뒤치락, 온갖 일을 겪는답니다. 저한테는 실제 모델이 있는데, 저를 지은 루이스 캐럴 아저씨가 몹시 귀여워했던 앨리스라는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랍니다. 옥스포드대학의 수학교수였던 캐럴 아저씨는 앨리스 자매를 태우고 뱃놀이를 하다가 즉석에서 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군요. 그래서 그런지 구성은 좀 엉성하다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흠쯤이야 덮고도 남을 훌륭한 점이 얼마나 많다구요?

1865년에 태어난 저는, 당시까지만 해도 따분한 교훈이나 잔뜩 겁 주는 훈계 이야기에 짓눌려 있던 아이들에게 자유롭고 즐거운 환상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지도, 무게 잡으려 들지도 않아요. 캐럴 아저씨는 그저 앨리스가 즐거워하기만을 바라면서 기발한 인물과 사건들을 만들어냈지요.

하지만 제 이야기는 그런 재미 외에도 굉장히 풍성한 철학적, 심리적, 사회적 숨은 뜻을 갖고 있대요. 수많은 학자들이 저를 붙들고 암호 풀듯 씨름하는 걸 보면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뭐, 제 얘기가 성장과 자기성찰, 자기확인에 관한 이야기라나요? 또 당시의 문학과 교육과 사회를 비꼬는 예리한 풍자문학이라나요? 20세기의 형식 파괴 문학, 의식의 흐름 문학을 예견하는 작품이라는 평도 있고요. 말과 논리를 가지고 절묘하게 장난치는 넌센스문학이기도 하대요. 와! 어마어마하죠?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제가 솔직하다는 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예의바르게 굴고 싶어하지만 워낙 호기심도 많고 깜빡 잊기도 잘해서 남의 마음 상하게 하는 때가 여러 번 있다는 거 숨기지 않잖아요? 눈물 연못에 빠진 쥐나 쐐기벌레한테 하는 거 보세요. 남의 말에 톡톡 끼어들기도 잘하구요. 앞뒤 안 재고 불쑥불쑥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 곤란하게 만들기도 해요. 정말 제가 제 자신을 어쩔 수가 없다구요.

하긴, 그렇게 어린아이다운 특성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게 제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본능적인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이상한 나라에 뛰어든 덕분에 이 멋진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세상은 따분할망정 나름대로 꿈을 꾸면서 재미있고 즐거워 어쩔줄 몰라하는 재주, 그거야말로 우리 아이들만의 능력과 특권 아니겠어요? 제 이야기를 읽는 아이들이 모두 그 능력과 특권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 뭐, 정 원하신다면 조금 나눠 드릴게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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