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이래서 명작]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 입력 2000년 7월 31일 14시 32분


◆여성이 작가가 된다?

20대 초반 무명의 샬럿 브론테는 계관시인 로버트 사우디에게 자신이 쓴 시를 보내며 강평을 청했다. 작품을 읽은 후 사우디는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호평하면서, 몇가지 우려 섞인 충고를 덧붙였다.

"당신이 습관적으로 빠져드는 백일몽들은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자아내기가 쉽습니다...... 문학은 여자의 일이 아니며 여자의 일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여자가 본연의 임무에 열심히 임할수록 문학을 할 여가시간은 줄어들 것이오."

이같은 충고에 대해 샬럿 브론테는 이렇게 답한다.

"제 이름이 인쇄되는 것을 보리라는 야심은 결코 갖지 않겠습니다...... 저녁녘이면 상념에 잠기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제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저는 여성이 완수해야 하는 모든 임무를 주의깊게 수행할 뿐 아니라 거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려 애써 왔습니다. 하지만 항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죠. 가르치거나 바느질할 때면 이따금씩 차라리 책을 읽거나 글을 썼으면 싶어지니까요."

여성으로서 글쓰기에 대해 당시 통념이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 잘 나타내주는 일화다.

샬럿 브론테와 두 여동생 에밀리와 앤 브론테는 같은 해 각기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애그니스 그레이 Agnes Gray》를 출간하면서 당시 영국 문단에 일대 화제를 몰고 왔을 뿐 아니라, 앞의 두 작품은 지금까지도 19세기 영문학의 중요한 성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세 자매 모두 처음에는 필명으로 남자 이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명 작가가 된 후에도 샬럿의 개인적 삶은 고독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샬럿은 정신적 교감을 나눌 형제자매를 차례대로 모두 잃었다. 홀아버지와 함께 독신으로 살던 샬럿은 서른일곱이 되어 결혼을 하지만 몇 달 못가서 돌연 세상을 뜨고 만다. 조용하고 얌전한 독신 여성이었던 샬럿 브론테는 그러나 《제인 에어》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통해 자신과 같은 여성들 속에 깃들인 열정과 분노, 사색과 고민을 백오십 년이 지난 지금에까지도 실감나게 전해주고 있다.

◆작가를 꿈꾸던 시골 목사의 딸

샬럿 브론테는 아일랜드계 목사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론테의 5녀 1남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위로는 마리아와 엘리자베스, 그리고 아래로는 에밀리와 앤, 그리고 남동생 패트릭 브랜웰이 있었다. 어머니는 막내인 앤이 태어나고 1년 남짓 지나 사망한다. 아버지는 목사일에 바쁘고 이모가 대신 아이들을 보살폈지만 둘 다 엄격한 성격이어서 자상하게 돌봐주지는 못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자기 일은 스스로 챙기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자립심은 여전했다. 아버지는 엄격하기는 했지만 자녀들한테 독서를 권하고 무엇을 읽든 간섭하지 않았으며, 이런 환경에서 브론테 자매는 문학적 소양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샬럿은 여덟 살 때 언니들과 함께 목사의 딸들을 위한 자선학교에 입학하지만, 두 언니가 전염병에 걸려 죽게 되어 열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이 학교의 인상은 강렬하게 남아 《제인 에어》의 로우드 학원에 반영된다. 그후 집에서 지내면서 광범위한 독서를 하고 희곡을 함께 쓰는 등 문학적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샬럿은 10대 중반에 이미 20여 권의 작품을 썼다고 술회한 바 있다.

얼마 동안 정규교육을 받고 보조교사로도 일했던 샬럿이 사우디에게 시를 보낸 시기도 20대로 막 접어든 이 무렵의 일이다. 3년 만에 교사일을 그만둔 샬럿은 두 차례 청혼을 받지만 거절한다. 샬럿은 두 여동생과 함께 학교를 차려 독립하기로 작정하고, 에밀리와 함께 브뤼셀로 가 기숙학교에서 학생이자 교사로 2년 동안 체류하는데, 이때의 체험이 《교수 The Professor》와 《빌레트 Vilette》에 담겨 있다.

그러나 브뤼셀의 경험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학교를 여는 계획은 포기한 세 자매는 창작에 몰두하며, 1846년 공동시집을 출간한다. 셋 모두 남자이름을 필명으로 삼는데, 샬럿의 필명은 '커러 벨 Currer Bell'이었다. 그리고 각자 쓴 소설들을 출판사 여러 곳에 보내 《폭풍의 언덕》과 《애그니스 그레이》는 출간되지만, 샬럿이 쓴 《교수》는 계속 거부를 당한다. 결국 이 작품은 샬럿 생전에 출간되지 못한다. 그러나 샬럿은 더욱 기운을 내 《제인 에어》를 완성했다.

1847년 출간된 이 작품은 선풍적인 관심을 끌며 그 해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후 세 자매는 자신들의 신원을 밝히고, 이어 샬럿은 《셜리 Shirley》 집필에 들어간다. 그러나 1년 새 브랜웰, 에밀리, 앤이 모두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셜리》를 완성하고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샬럿은 새커리, 엘리자베스 개스컬 등 당대의 문인들과 교분을 맺기도 한다.

샬럿은 아버지 교회의 목사보인 아서 니콜스의 구애를 받아들여,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네 살 때부터 살아온 하워스에 살림을 차린다. 샬럿은 목사 아내의 직분에 충실하면서 새 작품도 시도하지만, 몇 달 안되어 앓아누워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사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임신중독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전한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외진 곳에서 몇 달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친 샬럿 브론테. 그녀는 자신처럼 가난한 중산층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품들을 통해 영국사회의 모습과 여성이 처한 위치를 정확하게 그려냈다. 여성들의 삶에 가해지는 속박에 뜨겁게 항변하기도 했던 그녀의 작품은 선구적인 페미니스트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외숙모 집에 얹혀 사는 고아 소녀 제인 에어. 예쁘지도 않고 유별나게 침울한 제인은 외숙모는 물론이고 하녀들한테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사촌 오빠의 끝없는 폭력에 시달린다. 기숙학교에 들어감으로써 괴로운 더부살이에서는 벗어나지만, 가난한 고아소녀들을 수용하는 이곳에서 제인은 춥고 배고플 뿐 아니라, 엄격하고 위선적인 교칙들에 숨이 막힌다. 다만 친구 헬렌과 원장인 템플 선생은 어두움을 비춰주는 빛과도 같은 존재다. 제인은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인내하는 마음을 배우며 정신적으로 성숙한다.

공부를 마친 후 이 학교의 선생이 된 제인은 가정교사가 되어 손필드로 오면서 드디어 세상 속으로 나온다. 격의없이 대해주는 친절한 페어팩스 부인, 제인을 따르는 아델과 평화를 맛본 그녀는 괴팍하지만 강렬한 흡인력을 지닌 독신남이자 집주인인 로체스터와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가끔씩 들려오는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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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한국과학기술원 교수 /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http://www.bookcosm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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