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경기에서는 몇 백분의 1초 또는 몇 ㎝의 차이로 승부가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놓고 세계적인 선수들이 겨루는 올림픽에서 남보다 앞선 경기력을 향상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운동선수와 감독들이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스포츠과학은 생리학 심리학 생물역학의 기본 원리를 훈련에 응용한다. 이를테면 생리학자들은 종목별로 에너지 소요량을 계산하여 훈련기간과 강도를 조절한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정신훈련 기법을 동원해 자신감을 심어준다. 생물역학 전문가들은 컴퓨터와 비디오 장치로 선수의 동작을 연구한다.
미국 올림픽 훈련센터에서는 애틀랜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스포츠과학을 도입해 사이클링 역도 로잉(rowing) 사격 등의 선수 기량이 향상될 것을 기대했다. 특히 도로 사이클 경주에서 스포츠과학의 진가가 드러날 것으로 전망했다. 왜냐 하면 다섯 시간 동안 228㎞를 달리는, 경기 시간이 가장 길고 에너지 소모량이 많은 종목이기 때문이다.
중점 훈련 대상은 랜스 암스트롱. 스무살 때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지는 못했으나 심폐기능 등의 신체 조건이 사이클 선수로 안성맞춤인 유망주였다.
생리학자들은 암스트롱의 체내에서 에너지가 생성되고 소모되는 과정을 면밀히 점검해 근육의 피로를 감소시키는 훈련 방법을 권유했다.
한편 생물역학 실험실에서는 암스트롱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기술, 자전거를 타는 자세, 자전거의 구조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암스트롱은 두 발이 거의 똑같은 힘과 방향으로 페달을 밟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페달이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추진력에서 약간 차이가 나는 것이 결함으로 지적됐다.
자전거를 타는 자세는 공기 저항과 직결돼 경주 속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사이클 선수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암스트롱의 자세를 비디오로 촬영해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그의 몸통을 낮출 필요가 있음을 밝혀냈다.
그밖에도 자전거를 탈 때 벌린 두 팔의 간격, 머리의 위치, 핸들을 잡는 손의 동작 따위에 대해 시정을 권고했다. 자세를 시정한 결과 경주 속도가 종전보다 시간당 1.44㎞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자전거 설계기술자들은 공기역학을 응용하기 위해 자전거 구조를 샅샅이 분석했다. 가령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 방법으로 앞바퀴를 좀 더 작고 좁게 만들었다. 또 첨단의 복합재료로 자전거를 제작했다.
이와 같이 스포츠과학의 도움으로 경기력이 보강된 암스트롱은 천하무적이었다. 1993년 세계 사이클선수권대회에서 챔피언이 되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의 나이 스물넷. 그러나 그 해 가을 그는 고환암 선고를 받는다.
암세포가 뇌와 폐에까지 전이돼 생존 확률은 40% 미만이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쪽 고환과 뇌의 일부를 제거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생명의 끈을 붙잡는다. 그리고 인간승리의 기적이 일어난다. 처절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훈련을 병행해 불사조처럼 세계 최강의 선수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초인적인 정신력의 개가였다.
16개월의 투병 끝에 1998년 2월 페달을 다시 밟은 암스트롱은 1999년 투르드프랑스(Tour de France·프랑스 일주 사이클대회)에서 챔피언에 등극한다. 투르드프랑스는 해마다 프랑스 전역 3630㎞를 23일 동안 질주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도로사이클대회다. 난코스로 악명이 높다.
7월 암스트롱은 87회 투르드프랑스에서 다시 우승해 그의 2연패는 파리 시민들은 물론 지구촌 스포츠팬들을 감동시켰다. 9월에는 시드니올림픽에 도전한다는 소식이다. 그의 자전거 바퀴에 승리의 여신이 함께하기를.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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