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주의와 다수에 대한 우상화는 저널리즘의 속성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모든 저널리즘이 그런 것은 아니다. ‘좋은 저널리즘’은 다수에 열광하기보다는 항상 다수가 갖고 있는 폭력성을 경계한다. ‘좋은 저널리즘’은 삼가고 절제하면서 저널리즘의 품위를 소중하게 여긴다.
우리의 신문 및 방송사 사장단 48명이 5일부터 12일까지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 초청 형식을 빌려 북한을 방문한다.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은 지난번 남북정상회담 때 김위원장의 남쪽 언론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계기로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 방북의 목적은 이런 맥락 속에서 짐작되는 바가 있다. 언론사 사장들의 방북은 남북 교류의 촉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언론사 사장들의 집단 방북은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48명이나 되는 많은 언론사 대표들이(한국신문협회 회원사는 46개이고 방송협회 회원사는 32개로 총 78개)무리를 지어 가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측이 오라고 한다고 해서 너도나도 다퉈 가면서 집단 행차를 하는 것은 결코 품위 있는 행위로 보이지 않는다. 정중하게(?) 초청했다 하더라도 다음날로 우리나라 언론사의 거의 3분의 2가 한꺼번에 나선다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 아니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특수하다 하더라도 이는 적절한 일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 어느 나라 언론계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는 스스로의 품위와 권위를 손상하는 일이고 삼가고 절제하는 모습이 아니다.
다음으로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이번 방북에 내재해 있는 언론사의 언론답지 않은 모습이다. 우리 언론의 기본 덕목(德目)은 개별성과 자율성이란 가치다. 언론인은 궁극적으로 단독자(單獨者)이다. 언론인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의 책임하에 언론 행위를 한다. 집단주의는 언론이 기피해야 할 악덕(惡德)이다. 언론사이든 언론인이든 집단 행위는 위험하다. 집단주의는 자율적인 언론 활동을 저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출입처의 기자단이란 단체를 비판한다. 같은 이유에서 언론사 사장들의 ‘집단’ 방북은 언론답지 않은 행위이다.
더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것은 이번 방북의 목적이 취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방북 목적으로 신문 및 방송협회가 내세운 명분은 남북간의 언론 교류를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해가 안된다. 이런 협의를 위해 거의 모든 언론사 사장들이 떨쳐나서야 할 이유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언론계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무(無)사려와 특권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또 하나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사실은 이번 사장단 방북에 정부, 즉 문화관광부가 깊이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48명의 사장단이 문화관광부장관의 인솔(물론 인솔이 아니라 동행이라고 하겠지만)하에 기록 요원으로 문화부 직원의 도움을 받으면서 방북길에 나서는 것은 실로 납득이 잘 안되는 일이다. 이런 일은 아무리 남북관계가 특수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언론의 독립성과 존엄성을 해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는 정부에 있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기관 주도하의 방북은 한국 언론이 정부의 손안에 있다는 인상을 북측에 주게 되고 이런 인식은 북한에 관한 보도를 둘러싸고 앞으로 우리 정부와 언론간의 갈등을 심각하게 증폭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향민과 이산가족을 뒤로 하면서 언론사 사장들이 이런 기회를 갖는데는 그 나름대로의 성찰이 있어야 한다. ‘좋은 이웃은 좋은 담장 사이에서 생긴다’는 말이 있다. 서로 간의 경계선이 분명할 때 평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 언론과 우리 정부 그리고 우리 언론과 북한 정부 사이에도 좋은 경계가 그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깊은 사려와 절제가 요구된다.
임상원(고려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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