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서도 정상들은 키재기를 했다. 정상들이 서는 순서는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과 주최국 정상이 중앙을 차지하고 그 옆에 나머지 정상들이 대략 국력대로 자리하는 게 보통이다.
올해도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주최국인 일본의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중앙을 차지했다. 클린턴 옆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모리 옆에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서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사진을 통해 전세계에 전해졌다.
올해 사진을 보면서 해마다 G8(러시아가 참석하기 전에는 G7) 정상들의 모습을 비교하며마음이 편치 않았을 일본인들이 이번에는 비교적 기분이 괜찮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늘씬한 서양 정상들에 비해 일본 총리의 키가 유난히 작아 안돼 보였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리총리의 신장은 1m75지만 체격이 당당해 옆에 1m88이나 되는 클린턴 대통령이 섰는데도 별로 작아 보이지 않았다. 럭비를 한 모리총리는 체중이 본인 주장은 97㎏이지만 한눈에도 100㎏이 넘어 보일 정도로 당당하다.
문제는 클린턴 대통령 바로 옆에 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푸틴의 키가 얼마인지는 러시아에서는 ‘극비 사항’이다. 크렘린궁에 아무리 물어 봐야 알려주지 않는다. 그의 신장은 1m70으로 러시아 성인의 평균에도 크게 못 미친다. 푸틴이 장관들과 마주 서서 얘기한다면 거의 대부분 상대방의 눈이 아니라 목젖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크렘린이 공개하는 푸틴 사진은 대부분 앉아서 대화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클린턴 옆에 선 푸틴은 그렇게 작아 보이지 않았다.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가 전임 보리스 옐친의 갑작스러운 퇴임으로 ‘얼떨결에’ 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3개월만에 이룩한 업적들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푸틴이 G8에서도 맹활약, 8명의 정상 가운데 ‘가장 빛나는 지도자’로 선정됐다는 기사를 읽은 독자들에게는 푸틴이 키 때문에 작아 보인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물리적인 키는 상대적일 수 있다.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푸틴보다 더 작았지만 그를 ‘키 작은 인물’로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거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처럼. 심리학자들은 나폴레옹이나 푸틴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평균 이하의 신장이 오히려 평균 이상의 야망과 평균 이상의 성공을 만들어 낸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 정말로 크거나 작게 보이는 것은 그가 어떤 인물이고 무엇을 이룩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금은 작아도 귀하다’는 속담이 있다. 체구는 작아도 똑똑하고 야무진 푸틴같은 사람을 칭송하는 속담이다. 일본에도 키는 작아도 판단력이 예리하고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산초는 작은 알갱이지만 톡 쏘는 매운 맛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키 큰 지도자 여러분, 분발하십시오.
<방형남기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