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미술과 문학의 만남]화가와 文人 '치열한 사귐'

  • 입력 2000년 8월 4일 18시 26분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가림 지음/월간미술/156쪽/1만2000원▼

19세기,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과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

청년시절, 졸라가 세잔에게 편지를 보냈다.

“자네, 붓을 집어 던졌다던가? 왜 그토록 조급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하지.”

세잔과 졸라는 죽마고우였다. 병약하고 근시였던 졸라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그 때마다 세잔이 도와 주었다. 그 보답으로 졸라는 세잔에게 사과를 주었고 세잔은 그 사과를 놓고 정물화를 그리곤 했다.

친구 졸라가 준 사과 하나가 세잔을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어쨌든 세잔이 화가가 된 데는 졸라의 영향이 컸다. 세잔이 뒤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도 졸라의 권유에 의해서였으니.

하지만 그들의 30년 우정도 졸라의 소설 ‘작품’에 의해 파국을 맞는다. 이 소설 속에 묘사된 ‘실패한 천재’가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한 세잔. 자존심 상한 세잔은 이후 졸라를 영영 만나지 않았다.

화가와 문인의 만남, 그리고 미술과 문학의 만남. 이 책은 서양의 화가와 문인들이 시공을 넘나들며 교유한 우정과 사상, 치열한 예술혼,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한시대의 예술문화가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세잔과 졸라의 만남처럼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지만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우정은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폭력과 전쟁을 고발한 예술적 동지 피카소와 엘뤼아르, 이성에 대항해 광기의 불꽃을 태웠던 반 고흐와 앙토냉 아르토, 초현실주의 운동의 영원한 맞수이자 애증의 상대였던 미로와 브르통….

뼈만 앙상한 조각으로 인간의 고독을 표현한 자코메티와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사르트르. 예술적 철학적 교감을 주고 받으며 실존주의라는 한 시대의 사상을 이끌어간 화가와 문인이다.

자코메티의 작품과 예술정신으로부터 ‘고독한 실존’을 자각하고 존재와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졌던 사르트르. 그 사르트르의 작품비평을 통해 더욱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웠던 자코메티. 그들의 치열한 우정이 엄숙하게 다가온다.

말년에 시력을 잃고도 ‘살신성예(殺身成藝)’의 예술혼을 불태운 드가를 위해 ‘드가 춤 데생’이라는 책을 헌정했던 시인 폴 발레리의 우정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 얼마나 위대한 문화를 창조해왔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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