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데이트레이딩 규제 방침을 밝히자 증권가에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데이트레이딩의 부작용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구체적으로 간섭하고 나선 것은 지나치다는 분위기다. 국내 데이트레이딩의 실태와 미국의 사례를 짚어가면서 논란의 쟁점을 들여다본다.
금융감독원이 3일 데이트레이딩 규제 방침을 밝히자 증권가가 술렁이고 있다.
금감원 방안은 상당히 고 강도의 처방이다. 계좌 개설시 데이트레이딩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데이트레이딩에 부적합한 투자자에 대해서는 아예 전산프로그램 상에서 원천 봉쇄한다는 것.
금감원 이갑수(李甲洙)자본시장감독국장은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데이트레이딩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속출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규제책을 마련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증권가는 대체로 반발하는 분위기이다. 온라인 증권사인 키움닷컴증권 김범석(金範錫)사장은 “증권사 직원이 성과급을 많이 받기 위해 임의로 여러 번 매매를 하는 것과 달리 데이트레이딩은 고객이 자기책임 하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 방침은 나름의 투자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사이버증권사 이사는 “데이트레이딩은 중장기보유 방식의 투자가 성공할 확률이 낮은 국내증시에서 손실위험을 줄이기 위한 투자기법”이라며 “개인들의 데이트레이딩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허수주문, 중복매매 등으로 시장분위기를 흐리는 일부 기관의 악질적 데이트레이딩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장의 반발을 의식했음인지 금감원은 여러 가지 단서를 붙이고 있다.
이국장은 “증권사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지 금감원이 강제로 시키는 것은 아니다”면서 “결국 투자자들에게 데이트레이딩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자는 취지”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는 “고객의 재산상황, 투자자산의 성격, 투자경력 등을 조사한 결과 설혹 데이트레이딩에 부적합한 것으로 밝혀졌을 때도 고객이 하겠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한 걸음 물러섰다. 또 신규 고객만 해당되지 기존 데이트레이더들에게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설명.
한 증권사 임원은 “정부가 시장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운을 뗀 느낌”이라며 “결국 증권사와 투자자들의 반발로 규제의 실행 여부를 증권사들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며 증권사들은 자신의 약정 감소를 초래할 규제를 마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증권 관계자들도 있다.
현대증권 이재형(李載滎) 리치센터 본부장은 “미국에서의 데이트레이딩 규제는 고객 성향에 맞는 종합자산관리를 하는 증권사에서 자율적으로 시행중인 것이라서 단순 중개업무에 치중한 국내증권사가 도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도 “데이트레이딩은 위험한 투자방식인 만큼 국내증권사들도 건전한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자율적인 내부감시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단타매매 실태
국내 주식투자자들의 데이트레이딩(초단타매매) 비중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증권거래소의 조사에 따르면 7월중 거래소시장의 데이트레이딩 비중은 거래대금 기준으로 33.23%, 거래량 기준으로는 46.25%에 이른다. 코스닥시장의 경우 조사자료는 없으나 증권가에서는 7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한다.
거래소 데이트레이딩의 94.24%(거래대금 기준)는 개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7월중 개인들의 거래에서 데이트레이딩의 비중은 거래대금 기준 42.1%로 조사됐다. 거래량 기준으로는 56% 가량으로 추정된다. 즉 개인들이 주식을 두 번 거래할 때마다 한 번은 당일 산 종목을 팔거나 또는 그날 판 동일종목을 되사고 있다.
데이트레이딩 비중의 증가는 사이버증권거래 비중의 증가와 궤를 같이한다. 거래횟수가 많아 수수료 부담이 큰 데이트레이더들은 대부분 수수료율이 낮은 사이버거래를 통해 매매주문을 내기 때문이다. 코스닥증권시장에 따르면 국내증권사들의 사이버거래 비중은 LG증권과 현대증권을 제외할 경우 70.7%로 나타났다.
외국의 데이트레이딩 비중은 현저히 낮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외국 증시 중에서 데이트레이딩이 가장 성행한다고 알려진 미국 나스닥시장의 경우 10∼15%로 추정된다. 미 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데이트레이더들은 7000명 가량. 국내투자자 중 데이트레이더는 최소한 1만명은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트레이딩이 중장기 보유 방식의 주식투자에 비해 수익률이 높은지 낮은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에서는 연구된 바가 없다.
증권업협회 강석훈(姜錫勳)팀장은 “미국에서 나온 연구결과들을 보면 대체로 ‘데이트레이딩이 장기적으로 시장평균 수익률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데이트레이딩이 주가의 장중변동폭을 높이는지 낮추는지에 대해서는 증권거래소에서 서너번 조사했으나 그 결과가 엇갈렸다.
▼미국의 경우
외국에서도 데이트레이딩(초단타 매매)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실제로 이를 적극 규제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유일하게 데이트레이딩 규제와 관련한 법제화를 추진중인 곳이 미국.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는 지난달 10일 미 증권업협회(NASD)가 제안한 새로운 규칙안을 승인했다.
이 규칙안은 고객이 데이트레이딩 목적으로 계좌를 개설할 때 고객의 투자 적합성을 점검하고 데이트레이딩의 위험성을 알리는 의무를 증권사에 부과했다. 증권사는 고객의 재산상황, 투자경력, 투자대상 자산 등을 상세히 조사해 문서화하고 이를 근거로 투자상담을 해줘야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같은 규칙안이 마련되기 전에도 미국에서는 자산종합관리 업무를 주로 하는 오프라인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고객의 매매패턴을 감시하고 데이트레이딩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미국계 투자은행 메릴린치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력이 있는 현대증권 이재형 리치센터본부장에 따르면 메릴린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메릴린치는 미리 파악해둔 고객 정보를 토대로 회사내부 감사팀이 고객의 매매패턴을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건전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계좌를 개설할 때 ‘최근 직장에서 은퇴했으며 퇴직금을 갖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목표로 투자하겠다’고 말한 고객이 어느 날 갑자기 과도한 매수주문을 내거나 매매횟수를 늘릴 경우 감시팀에 곧바로 적발해 본인과 직원에게 알린다. 주문량이 평소와 너무 다르면 아예 주문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기도 한다. 그 날의 비정상적인 매매패턴의 원인이 담당 직원의 상담 잘못인지, 본인의 과도한 욕심인지 등을 가려내고 그에 따라 문제를 해결한다.
이본부장은 “어떤 종류의 계좌를 틀 것인지, 데이트레이딩을 할지 말지 등은 전적으로 고객이 결정을 내리며 증권사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고객의 투자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사이버거래 전담 증권사들은 메릴린치와 같은 내부 모니터링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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