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신간]'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 입력 2000년 8월 4일 18시 45분


‘영국을 중심으로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이 결성되자, 나폴레옹이 먼저 영국을 침공했으나 트라팔가 해전에서 패했다. 그러나 그는 지상전에서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하여 신성로마제국을 해체시켰고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승리하여 그들에게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게 함으로써 유럽 대륙을 정복했다.’

나폴레옹시대를 서술한 서양사 개설서는 보통 이런 식이다. 마치 영웅 나폴레옹의 역사와 같다. 보통 사람의 역사는 없다. 영웅 중심, 지배자 중심의 정치사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시각으로는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20세기 후반부터 이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혁명이나 전쟁, 군주나 영웅 중심이 아니라 사소한 문화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른바 ‘신문화사’. 이는 기존 역사 연구 방법론의 해체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신문화사에 대한 개설서다. 저자는 서양의 신문화사 관련 서적을 다수 번역한 서양사학자이자 한국교원대교수. 아직 신문화사를 구체적 혹은 개괄적으로 소개한 책이 별로 없는 현실에서 우선 이 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두껍지 않지만 그 내용은 튼실하다.

이 책의 특징은 국내에 번역 소개되어 있는 신문화사 관련 저작물을 예로 들면서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책 속에 책이 있는 셈이다. 독자들은 신문화사에 대한 안내도 받고 동시에 관련 저작물도 간단하게나마 통독할 수 있다. 그래서 좀더 쉽게 신문화사를 이해할 수있다.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책의 하나는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

1730년대 파리의 한 인쇄소에서 일어난 고양이 대학살. 주인이 사랑하는 고양이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던 인쇄소 노동자들이 꾀를 내어 그 고양이를 죽인 것이다. 어찌 보면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러나 단턴은 여기서 역사를 발견한다. 이 사건을 통해 프랑스 혁명 이전 노동자들의 정신세계로 파고 들어가 인쇄공들의 생활, 당시 대중들의 의례와 상징, 민속에서의 고양이의 의미와 상징 등을 읽어낸다.

또다른 책 속의 책은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 설탕이 어떻게 노동력을 착취했고 인간의 의식을 바꿔놓았는지, 설탕을 놓고 유럽 열강 등이 어떻게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를 추적한다. 설탕으로 인한 유럽 역사의 변화까지. 마크 쿨란스키의 ‘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역사 연구방법론은 작은 것을 통해 역사를 본다는 뜻에서 ‘미시사(微示史)’라고도 한다. 저자인 조교수는 이에 대해 “인류학자가 현장 조사하듯 면밀히 추적해 그 역사적 의미를 복합적인 사회 관계 속에서 파악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의 경우, 여성의 시각으로 프랑스 혁명을 본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던 프랑스 혁명의 이면에 철저한 가부장적 남성중심주의가 숨어있음을 파헤친다.

저자는 이러한 신문화사 관련 서적을 소개하면서 신문화사의 장점을 강조한다. 역사를 다양하게 그리고 밑으로부터 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다는 점,타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 등등. 다양한 시각에 의해 풍성하게 드러난 역사가 한데 어울릴 때 역사는 좀 더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렇다고 신문화사나 미시사가 기존의 역사 서술 방법을 완전히 대체한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신문화사와 미시사 역시 거대한 설명의 틀이 없다면 역사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조한욱 지음/ 책세상/ 162쪽, 39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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