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말은 우리의 전통사회에 뿌리깊게 내려온 계급적 의미를 지닌 계층 분류이다. 붓을 쥐는 자가 돈을 쥐는 자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는 물론 명예를 누리던 것이 우리의 전통이었다. 자본주의가 사회의 기본 철학과 인식으로 보편화되면서 기업가, 자본가 혹은 사장이란 분들의 지위가 높아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붓을 든 사람이 더 대접을 받는 것이 우리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교수에서 사장으로 자리를 바꾸었을 때 사(士)에서 바로 상(商)으로 추락한 느낌을 받았다. 사에서 상으로 가는 과정에는 농(農)도 있고 공(工)도 있는데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한 순간에 정점에서 저점으로 떨어졌다.
경영학 교수로 재직할 때 경영 자문을 많이 했다. 현장에 나가 문제를 해결해 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최고경영자(CEO)로 기업을 경영하는데 어려움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사회적 분위기도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역량을 상업화하는 것을 장려하는 터라 특별한 고민 없이 경영일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영현장은 차가웠다. 말로는 경제입국을 외치면서도 기업인을 너무 홀대했다. 한 유력 경제신문은 계약을 파기하면서 학자출신 경영인을 울렸다. 직원들은 소송을 제기하라고 아우성이었다. 차마 저속한 싸움을 벌일 수 없어 손실을 보고 넘어갔다. 참으로 야속했다. 학자 시절에는 원고 한 번 써달라고 애원하던 사람이 태도를 표변하여 만나주지도 않을 때에는 모멸감까지 느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뼈저리게 느꼈다. 기업인을 최하층 계급으로 보는 문화에서는 경제발전이 있을 수 없다.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에서는 기업을 가장 중요한 경제 주체로 보고 있다.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기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이나마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기업과 기업인의 덕이다. 남북대화도 경제로 뚫었다.
사농공상의 서열은 없어져야 한다. 오랜 폐습을 고치는 것이 말로만은 안된다. 정부부터 나서서 개혁해야 한다. 우선 고시제도부터 폐지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한번 시험에 합격하면 평생이 보장되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디지털 시대에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제도다. 선진국에서 국가공무원을 고시로 뽑는 나라는 없다. 우리가 모델로 삼았던 일본도 사실상 고시를 없애버렸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고시 하나만을 목표로 기존의 교과서만 달달 외우는 모습을 보면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디지털 시대는 창의성을 요구한다. 고시 제도는 잠재적 창의성까지도 말살시키는 것이다.
곧 개각을 단행한다고 한다. 현장을 뛰는 사람을 대거 기용했으면 한다. 사농공상의 후순위인 농공상에서 발탁했으면 한다. 미국이 증권맨 출신의 루빈을 재무장관으로 뽑아 경제를 중흥시킨 전례를 상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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