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모 대학 남녀 학생 두 명이 눈이 아름답게 쌓인 교정에서 영화 <러브 스토리>를 흉내냈다고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양 서로 부둥켜안고 눈위를 뒹굴었던 거지요. 그런데 그 아름다운 장면을 총장님께서 보셨습니다.
자, 우선 여기까지 읽으시고, 당신이 그 총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청춘은 아름답구나! 연인들이여, 오늘밤 아름다운 추억을 잔뜩 만들거라.
2. 쯧쯧, 캠퍼스에서 저게 무슨 짓이람. 그래, 젊으니까 저럴 수도 있겠지. 봐주자.
3. 저런 발칙한 놈들! 캠퍼스에서 문란한 짓을 하면 엮어버리는 무슨 학칙이 있을 거야!
당신은 몇번입니까? 그 총장님은 몇번을 선택하셨을까요? 총장님은 3번이었습니다. <러브 스토리>의 가엾은 두 주인공은 정학처분을 받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믿을 수 없고 코미디같은 우화지만, 사실인 걸 어쩝니까? 이제 75년 4월27일자 조선일보 기사 한 편을 읽어봅시다.
<우리나라 여대생은 1백%가, 남대생은 97.7%가 데이트 경험이 있으며 4회 정도 만나면 으례 팔짱을 끼는 등 10여년 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변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이화여대 등 5개대학 남녀학생 4백13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 남녀대학생의 데이트 실태'를 발표한 최신덕교수(이대 사회학과)의 연구논문에서 밝혀졌다.
“예전에는 가문을 보고 부모나 친척들이 소개했지만 지금은 문벌이나 후손보다 개인의 행복이 앞서고 있어요. 이런 사회변동에 따라 서로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데이트란 어쩔 수 없는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최교수는 필요에 따라 모두 데이트를 하지만 본질이나 방법을 서로 모르면서 만나는 것 같고, 부모나 사회도 젊은이들의 만남을 무조건 문란하게만 생각하는 경향이어서, 좀더 바람직한 데이팅의 이해를 위해 연구를 시작했단다.(중략)
“그러나 아직도 사고방식은 옛날 그대로인 채 겉으로만 남들이 하는 데이트를 하고 있어 기대하는 것과 서로의 행위가 잘 맞지 않아요.”
데이트에서 자기가 해야할 태도나 상대방에게 기대할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몰라, 선보러 가는 것처럼 허둥대거나 한번 만나면 춘향이처럼 정절을 지켜야 하는 줄로 알고 있다는 것.
하지만 대학생의 85% 이상이 대학 1년 이전에 이미 데이트를 경험하고 있다. 이들이 경험한 데이트의 성격은 저학년 때는 그룹데이트, 또 아무 하고나 부담없이 만나는 랜덤 데이트를 즐기다 학년이 높아갈수록 제한된 상대(거의 정해진 꼭 한사람)와 연인관계가 되는 스테디 데이트로 기우는 비율이 높다. 남학생들은 그룹, 랜덤, 스테디 데이트중 평균 한 사람이 두 종류 이상을, 여학생은 1.5종류의 데이트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중략)
놀라운 것은 대학생들의 변한 애정관이다.
‘만약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태도'란 설문에 남학생 30%, 여학생 27%가 ‘당장 절교'란에 응답했을 뿐, 나머지는 ‘상관없다'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겠다'는등 자유분방한 사고를 나타내고 있다.
최교수는 ①데이트를 하려면 대화할 수 있는 교양과 성숙이 필요하고 ②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이 건전한 데이트이며 ③부모나 사회가 반대보다 이해해야 비뚤어지지 않는 올바른 이성교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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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19세기 ▼
총장님이 건재하시던 그 시절, 저는 전동국민학교와 경희여중을 졸업하고 동구여상에 다니던 우혜옥을 사귀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녀의 연애편지가 책가방에서 나오는 바람에 화학선생에게 무진장 얻어터졌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나 그만 만나라. 너 공부 열심히 해야지'라는 충고였지요. 그즈음 어떤 여학생과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함께 사먹다 현장에서 걸린 제 동창 장재혁은 유기정학이라는 쓴맛을 봤지요.
어떻습니까.
저는 ‘저놈들을 짤라라'고 격노했던 총장님과, ‘바람직한 데이팅의 이해를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는 교수님과, ‘상대방의 성경험을 알면 당장 절교한다'는 학생과, `조사결과가 놀랍다'는 기자와, 그리고 저와 장재혁과 우혜옥의 얘기를 하면서 이른바 근대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이상(李箱)은 일찍이 이렇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진정한 20세기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도 많은 19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의 피가 위협하듯이 흐르고 있”다는 한탄이지요.
21세기에 살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은 얼만큼 근대인이신가요.
늘보<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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