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일련의 도주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불구속 피고인과 피의자의 신병관리 체계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해외도피가 단순히 제도의 허점이나 수사실무자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들이 이른바 ‘배경’이 없는 일반 피의자였다면 과연 해외도피가 가능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특히 김 전의원 사건의 경우 검찰이 정치권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주춤거리다 결국 피의자를 놓친 것이다. 김 전의원은 전직 국세청장과 현직 은행장, 또다른 정치권 인사 등이 관련된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어찌된 일인지 지난달 중순 김 전의원의 혐의를 확인하고도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그가 1차 소환에 불응하자 뒤늦게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주요 사건 관련자에 대해선 먼저 출국금지 조치를 취한 뒤 수사를 진행했음에 비추어 김 전의원의 경우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세풍사건에 연루됐던 서상목(徐相穆)전 한나라당 의원은 1998년 자신이 출국금지된 사실을 모르고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제지당하기도 했다.
김 전의원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정치권의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왔고, 정치인이 연루된 사건이면 늘 그러했듯이 수사실무팀과 지휘부가 사건처리 방향을 놓고 대립해 왔다는 검찰 주변의 얘기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얼마 전 한 현직 검사가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를 구속할 때는 법무부장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 법무부 예규를 고쳐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외친 일이 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여전히 절실한 과제라는 것이다. 김 전의원 사건은 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검찰 수뇌부를 비롯한 검사 개개인의 자기 혁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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