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광기》의 귀신 이야기는 "'귀신'은 대체 어떤 존재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을까?"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대개 이야기들은 그 옛날 중국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귀신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이해'로 바꿔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팽호자(彭虎子)라는 사람은 '호랑이의 아들'이라는 이름답게 젊어서 완력이 셌는데, 그는 항상 귀신이란 것은 없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죽자, 무당이 그에게 이렇게 주의를 줬다.
"며칠 뒤에 재앙이 있어서 또 사람이 죽을 것이니, 때맞춰 피해야 할 것이네."
이 말을 듣고 집안의 남녀노소가 모두 도망가서 숨었으나, 팽호자는 혼자 집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이 깊었을 때, 어떤 사람이 대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그 사람은 동쪽과 서쪽의 사랑채를 뒤져봤으나 사람을 찾지 못하자, 안채로 들어와서 부엌 쪽으로 향했다. 팽호자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었다. 마침 침상 머리에 단지가 하나 있어서, 그는 다급한 김에 그 속으로 들어가 널빤지로 입구를 닫았다.
잠시 후에 그는 모친의 영혼이 널빤지 위에 올라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웅크린 채로 귀신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널빤지 아래 사람이 없소?"
"없소."
대답한 쪽의 목소리는 바로 자기 어머니와 똑같았다. 곧이어 두 귀신이 함께 떠나자, 팽호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단지에서 기어 나왔다. --《계신록(稽神錄)》에서
먼 옛날 중국인은 우주가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이승)과 죽은 뒤 가게 될 또 하나의 세상(저승)이 짝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육신과 분리돼 인간이 사는 이승과는 다른 저승에서 주로 활동하는 '귀신'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신의 감정이나 정신은 살아 있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과 살아가는 생활방식은 아주 다르다고 여겼다.
다시 말해 저승과 이승은 서로 다른 세계지만 두 세계의 시간-공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교묘하게 겹쳐 있기 때문에, 어느 특별한 지점에서 귀신과 인간이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만남은 저승의 귀신 세계가 이승의 인간 세계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저승도 인간 세계처럼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위계질서는 민간신앙과 도교, 불교의 여러 요소가 융합돼 좀더 구체적으로 변천됐는데, 저승의 정점에는 옥황상제와 같이 최고 권력자가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저승의 신이 '특별한 하늘'에 거처한다.
그리고 신 가운데 일부는 이승의 특별한 지역과 중첩되는 그들의 공간, 예를 들어 태산 등에 위치한 '저승의 관청'에 파견돼 정해진 지역의 '귀신'을 관리 감독하고 저승의 최고 기관과 연계해 업무를 수행한다. 당연히 이들 밑에는 업무를 도와주는 '귀신'들이 여러 분야에 포진해 있다. 그리고 해당 지역에 소속된 '귀신'들은 관리의 통제에 따라야 하는데, 이를 어기면 처벌이 뒤따른다. 이런 저승의 모습은 이승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진 국가 체계, 즉 지역을 나눠 통치하는 중국 고대 봉건제와 비슷하다. 다만 중국인은 이승의 인간은 저승에서 규정된 법칙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두 세계를 왕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중개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바로 귀신이다.
◇《태평광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대에서 북송 초에 이르는 야사와 전기, 각종 소설가의 저작들과 일부 도가, 불가의 이야기들이 수록된 《태평광기》는 태종(서기 976∼997 재위)의 명을 받은 이방(李昉) 등 12명의 학자들이 편찬했다. 여기에 참여한 학자들은 여문중(呂文仲), 오숙(吳淑), 진악(陳鄂), 조린기(趙隣幾), 동순(董淳), 장계(張 ), 송백(宋白), 서현(徐鉉), 탕열(湯悅), 이목(李穆), 호몽(扈蒙) 등이다. 태평흥국 2년(서기 977) 3월에 시작해 이듬해 8월에 완성된 이 책은 전체 500권으로 돼 있으며, 앞부분에 별도의 〈목록〉 10권이 실려 있다.
각 이야기들은 92종의 제재에 따라 분류됐는데, 특히 《신선》 55권, 《귀(鬼)》 40권, 《보응(報應)》 33권, 《신》 25권 등 흥미로운 몇몇 항목이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대개 《녹이기(錄異記)》, 《수신기(搜神記)》 등 한대부터 당대까지 편찬된 400여종의 이야기 모음에서 발췌한 것들인데, 이렇게 발췌한 이야기는 대개 끝에 그 출처가 밝혀져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송나라 이전의 각종 이야기를 집대성했기 때문에 자료적 가치 또한 높다.
이런 작업을 왕이 직접 명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이 편찬되기 얼마 전, 북송(北宋 960-1127) 초기는 100여 년 동안의 동란 끝에 송 왕조가 건립됐다. 각 지역의 할거세력이 차차 평정되고, 점차 통일 국가로서 안정과 번영을 회복하려는 기상이 무르익을 무렵, 송 왕조는 국가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대한 국책 저작들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태평광기》는 《태평어람太平御覽》과 함께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인데, 이런 편찬 사업을 통해 문학을 존중하고 유가의 권위를 세우는 '숭문우유(崇文右儒)' 정책을 표방해 문치국가(文治國家)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것이다. the more
홍상훈<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 /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