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한철/TV선정성 시청자도 감시해야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27분


방송이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악행만을 좇다보면 그것을 꾸짖기 위한 것일지라도 지속적으로 돌출됨으로써 반복으로 인한 세뇌작용 및 마취효과로 이 사회가 온통 부정과 비리의 온상인 양 착각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더 나아가 선하지 못한 마음은 방송 신문에 연일 보도되는 사건을 보고 자신은 그래도 저들에 비하면 양심적이고 양식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역기능에 의한 악순환의 반복이다.

TV에서의 가공된 폭력과 성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은 폭력행위를 보편화하거나 부채질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또래문화와 모방심에 민감한 청소년에게는 더욱 그렇다. 방송은 사고와 판단에 영향을 주고 동인(動因)을 유발하는 기능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방송 내용의 지나친 선정성과 폭력 묘사가 타율을 불러들인 것은 필연이다. 다만 방송의 주인인 수용자에 의해 계기가 마련되지 않은 점이 아쉬울 뿐이다. 우리 주위의 많은 방송물 중에 이미 비판대에 오른 선정성이나 폭력물은 폭력〓재미, 선정성〓시청률이란 등식 속에 들어 있음을 본다.

방송은 재미 못지 않게 문화성에 치중해야 하고 균형이 필요하다. 마음을 감싸주고 삶 자체를 진지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희열마저 느끼게 하는 방송이 좋은 방송이라고 하겠다. 공정 품격 교양을 생명으로 하는 BBC나 NHK는 공영방송의 정형이자 그 나라 국민의 자존심이고 양식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아침방송일 경우 밤 사이에 일어난 사건 사고가 참담한 내용일 경우에는 표현 하나라도 가급적 순화해서 방송하고 말미에 미담을 담아 사회에는 어두운 일과 밝은 일이 공존한다는 것을 일깨워 정서균형에 유의한다고 한다.

TV 프로그램의 폭력과 선정성은 잠재됐던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데 불과하다. 그러나 방송제작에만 화살을 돌릴 일이 아니다. 그런 제작관행은 상황이 몰아간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업주의적 인기에 영합한 폭력 선정물의 제작방송이 용인돼온 매체환경도 문제려니와 거부감 없이 빨려들어가는데 익숙해진 수용자 의식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전파정보의 홍수시대에 노출된 수용자는 이제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방송내용뿐만 아니라 케이블방송과 인터넷방송 등 대중매체들의 사익 앞에 보다 엄격히 맞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방송의 문화기능을 중시하지 않고 기업성에 비중을 둬 프로그램마저 상업주의 시장원리에 의존하는 공급 자세는 바뀌어야 한다. 공영방송은 더욱 그래야 한다. 시장원리의 적용은 정신문화 영역에 관한 한 엄격한 절제가 전제돼야 하는데도 정치 사회 문화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경제논리에 순치돼 가는 세태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을 수 있다.

흔히 “좋은 국민은 좋은 방송을 갖게 되며 반대로 좋은 방송은 좋은 국민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좋은 방송을 가지려는 수용자의 노력도 방송 종사자 못지 않게 요구되는 때라고 하겠다.

김한철(TBN 대전교통방송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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