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가시고기’ 엄마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27분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가 18주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50만부 이상 팔렸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비디오나 보고 싶은 이 더위에도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물러날 줄 모른다. 보통 아버지들은 어머니보다 자녀사랑에서 뒤지는 편인데 이 소설에서는 거꾸로다. 백혈병에 걸린 10세 소년 다움이 어머니는 화가의 꿈을 펴기 위해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은사 교수와 눈이 맞아 파리로 가버렸다. 다움이 아버지는 어렵게 치료비를 마련하고 방사선 치료와 골수 주사로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아들의 병상을 떠나지 않는다.

▷가시고기는 수컷이 물풀로 둥그런 집을 지어 부화한 새끼가 자라 헤엄쳐 나올 때까지 돌보는 습성이 있다. 암컷은 알들을 낳은 후 새끼야 어찌되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버린다. 소설 제목은 바로 이 민물고기에서 따왔다. 다움이는 어머니가 마련해준 수술비로 골수이식을 받고 건강을 되찾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도 못보고 간암으로 죽는다. 어찌보면 주말 연속극처럼 진부한 소재를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문장으로 엮어낸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지만 이것만으로는 가시고기의 폭발적 인기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여대생 딸이 공직자인 40대 어머니의 실명을 밝히며 가정에 대한 무책임과 불륜 사실을 인터넷에 올려 고발한 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론과 자식이 부모를 고발한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행동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부모 자녀 관계에서는 형법의 범인은닉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설사 아들이나 부모가 살인죄를 저질렀더라도 숨겨주는 것이 인륜(人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고발한 자녀를 매도만 하기에는 우리 사회상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자녀들도 부모가 가정을 지킬 책임을 다하는지를 지켜본다. 다움이가 파리로 갔던 어머니가 병실에 찾아오자 외면해버리듯이. 가시고기를 읽고 모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중년 남자들이 많다.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삭막한 사회라서 많은 독자들이 바보 같은 사내의 부정(父情)에서 진한 감동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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