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다시 고개드는 역사 왜곡

  • 입력 2000년 8월 9일 19시 01분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아시아 민족해방전쟁’으로 묘사하는 등 역사를 크게 왜곡한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을 곧 통과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은 여러 차례 제기되어온 문제이지만 이 책의 경우 역사교과서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객관성조차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과서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을 피해자로, 상대편인 연합국을 가해자로 표현한 것은 역사적 진실을 뒤바꿔놓은 대표적 사례다. 일본의 2차대전 참전은 일본의 영토확장 야욕에서 비롯됐으며 인근 아시아 국가들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던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이 책은 또 2차대전 당시 일본이 동남아 국가에 ‘진출’한 결과 유럽국가들의 식민지였던 이들 국가 사이에서 독립 물결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일본 전범자들을 처벌한 1946년 도쿄 극동국제군사재판이 부당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교과서는 일본의 우익인사들로 구성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회’가 집필한 것으로 예정대로라면 2002년 4월부터 중학교의 정식 교과서로 채택된다고 한다. 우익의 편향적 시각을 대변한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일본 학교에서 교과서로 채택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런 터무니없는 내용이 여과 없이 미래 세대에게 전달될 때 빚어지게 될 부작용이다.

이 책이 교육현장에서 사용될 경우 우리는 일본과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평화로운 공존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잘못된 교과서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왜곡된 역사인식이 ‘세습’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 같은 교과서 내용에 대해 별 거부감을 갖지 않는 일본내의 분위기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자민당은 한술 더 떠 이 교과서의 검정 합격 판정이 나도록 문부성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얼마 전 있었던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의 ‘신(神)의 나라’ 발언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都) 지사의 발언 등 일본 지도층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망언과 연관짓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번 교과서 문제가 이 같은 일본 사회의 극우적 분위기에 뿌리를 둔 것이라면 일본이 내세우는 21세기 한일관계의 발전과 화해, 평화 따위의 구호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교과서가 일본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다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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