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무’의 콘텐츠는 아날로그시대 콘텐츠의 전형이다. 첫사랑을 못잊어 하고 첫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이 콘텐츠는 서양의 그것과도 맥이 통한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이 첫사랑을 위한 복수에 목숨을 걸었고 ‘글래디에이터’에서 러셀 크로가 검을 잡은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젊은이들이 순정(純情)에 끌리는 것이다. ‘사랑의 편의점’에서 사랑을 수시로 바꿔가며 사는 시대, 무시로 접속하는 ‘온라인 사랑’의 범람 속에 신세대는 정말 아날로그식 사랑에 새로운 눈을 뜨기 시작했을까.
한 이동통신 광고를 보자.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소년은 매달 400번의 문자메시지를 무지막지하게 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도 모자라 소녀는 “(메시지를) 더 날려 줘. 더 날려 줘” 한다. 순정에 목말라 하는 신세대를 겨냥한 ‘순정 마케팅’이다.
그런데 이 소년이 날리는 ‘사랑’의 메시지는 욕망을 담은 모호한 그릇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 소비의 대상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사랑’이란 단어는 ‘애(愛)’일 수도 있지만 휴대전화에서 ‘ㅅ→ㅏ→ㄹ→ㅏ→o’의 다섯 버튼을 순서대로 재빠르게 누르는 ‘노동’의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400번의 노동은 ‘계량화된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과 ‘증오’(ㅈ→ㅡ→o→o→ㅗ)는 뜻이 반대지만 신세대에게는 ‘노동량’의 측면에서 동일한 범주(5번의 누름)에 속하는 단어일 수 있다.
순정의 ‘정(情)’과 그 속에 내포된 ‘질(質)’은 신세대의 온라인 상에서 ‘속(速)’과 ‘양(量)’의 문제로 바뀐다. 이들의 손끝에서 쏟아지는 메시지는 386세대가 과거 오락실에서 아군의 전투기를 목표로 다가오는 외계 물체를 향해 마구 총알을 퍼붓던 모습과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결국 얼마나 손가락을 재빨리 놀려 더 많은 ‘의미의 총알’(단어)을 보내느냐가 관심사인 것이다.
‘더 날려 줘, 더 날려 줘’를 일단 덮고 ‘어른들’의 순정에 대한 시각을 보자.
사랑에 관한 한 복선과 굴곡을 경험하지 않은 한 40대 여성은 단언한다. “순정은 의미 있는 보석처럼 영원불변하는 것이다. 순정은 존재한다.”
그러나 직업상 정반대의 경험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한 정신과전문의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순정은 한마디로 ‘환상사랑’이다. 사람의 감정은 흔들리고 변하는 것이기에, 변하지 않고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완벽한 것을 추구한다. 이것이 순정이다. 그래서 오래갈 수 없다.”
요즘 TV 오락프로그램이 어지럽단다. 어떤 50대 장관이 ‘직을 걸고’ 나섰다. 정부도 지금 순정이 그리운가 보다.
홍호표<부국장대우 문화부장>
hp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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