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한 지 1년도 안돼 IMF 위기를 맞았지만 젊은 원장이 열심히 성실하게 환자를 보살핀다는 소문이 나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은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정신없이 두 해쯤 보내고 나자 차츰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원초적인 의문이었다. 답은 ‘아니오’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최소한 80명의 환자를 보면서 양심적인 진료를 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진료원가에도 못미치는 의료수가체제에서 인건비와 관리비, 기계 감가상각비에 병원 차릴 때 투자금융에서 빌린 2억5000만원의 이자 내고 원금 까나가고 매달 200만∼300만원 정도 생활비 가져가려면 하루 80명에서 100명은 진료를 해야 한다.
그뿐인가. 대학에서 배운 대로 진료를 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 청구를 하면 거의 틀림없이 비용을 깎으라고 성화다. 교과서대로 소신있게 한 진료를 과잉진료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면 앞으로는 싼 카피약을 쓰라고도 한다. 취약한 보험재정 때문이라지만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그렇다고 일개 개업의의 힘으로는 맞서 싸울 수도 없다. 한두 번 그러다 보면 자연히 청구비용이 적게 나오도록 방어진료를 하게 된다. 적극적인 진료, 소신 진료와는 거리가 멀다. 수입을 올리려고 보험처리가 안되는 이런저런 검사를, 꼭 받지 않아도 되는 환자에게 받도록 하기도 했다. 이러고도 제대로 된 의사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이건 의사가 할 짓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자괴(自愧)했다.
그래도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약값의 거품을 뺀다면서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를 시행하면서부터는 당장 병원 운영조차 힘들게 됐다. 그동안 진료원가의 70% 정도인 의보수가의 구멍을 메워온 것이 약값이었다. 이를테면 실거래가는 70원이지만 정가 딱지에 100원이 붙은 약은 100원을 청구해 거기서 남는 돈으로 진료원가 손해분을 보전하고 쏠쏠하니 이문도 남겨온 것이 사실이었다. 떳떳한 노릇은 아니었지만 따지고 보면 정부가 저수가정책 대신 눈감아온 일종의 관행이었다. 아무튼 실거래가제가 시행되면서 월 매출액이 30% 이상 뚝 떨어졌다. 더구나 내과 소아과의 경우 전체 매출액 중 약가 비중이 60%선에 이르는 만큼 실거래가제 이후 의보수가를 두 차례나 올렸다고 해도 ‘새발의 피’였다.
그는 의사의 진료권이 보장되고 제대로 의사노릇을 할 수 있다면 의약분업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약사가 임의조제 대체조제 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진료권은 보장되지 않으면서 환자만 줄어들고, 그러다가 결국 병원문을 닫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정부와 여론은 의사들이 제밥그릇 챙기기나 한다고 닦아세운다. 아니, 십수년 공부하고 수련한 대가가 일반 월급쟁이만도 못한 판국에 제 밥그릇만 챙긴다고 하다니. 그는 분노하고 절망했다. 스스로 병원문을 닫았다가 열고,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가 길게 한숨을 쉬고 나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이나 행동이 반드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병원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의사의 괴로운 심정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의약분업을 계기로 정말 의사다운 의사노릇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저의 이런 바람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 같으니 떠나야죠. 가서 다시 공부해 전문의가 될 겁니다. 그런 뒤 고국으로 돌아와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그런 날이 언제가 될지….”
<전지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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