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3명과 형수님이 북한에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방북단 최종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복받쳤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기 어려울 것이라고는 짐작했지만 그래도 다시 못 뵙는 것이 한이 된다.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만나뵈었다면 좋았으련만…. 형님은 이번에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아 함께 가지는 못한다. 형님도 함께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들이 생각나면 너무나 힘이 들었다. 울적할 때는 한 잔 술로 마음을 달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제 그런 아픔의 50년 세월을 보내고 여동생들을 만나러 평양에 가게 되니 너무나 가슴이 벅차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김해진(서울 중랑구 면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