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북한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은 “김위원장이 특유의 자신감을 드러냈다”는 평가에서부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있다”는 신중론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큰 흐름 속에서 한마디 한마디의 함의(含意)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김위원장의 주요 발언을 ‘독해(讀解)’해봤다.
▽체제 유지를 위해 남북정부 모두 통일 문제를 이용해 왔다〓김위원장이 부친인 김일성(金日成)전주석의 통일 정책을 비판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 전문가들은 “김위원장이 아버지의 ‘통일 유훈’을 계승했고 그 자신도 그동안의 대남정책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에 이를 김전주석에 대한 비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제성호(諸成鎬·국제법)중앙대교수는 “대결 지향적인 보수적 시각을 포괄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전향적으로 통일 문제를 풀어 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내가 (로켓 개발 포기에 대해) 그냥 웃는 얘기로 한 것을 꽉 잡아 쥐었다〓김위원장의 말은 ‘푸틴대통령이 농담을 과장했다’는 것. 정부 관계자는 “미사일의 조건부 포기설과 관련해 김위원장이 정확한 진상을 밝혔을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푸틴대통령이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에 대한 국제적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북 미사일문제를 이용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는 일반 외교 관례와는 거리가 있는 행위”라고 말했다.
▽로켓 연구해서 몇 억달러씩 나오는데 그거 안할 수 있습니까〓전문가들은 “김위원장이 ‘군사용 미사일’과 ‘우주개발용 위성’을 모두 ‘로켓’으로 혼용해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 억달러씩 나오는’ 로켓은 군사용이며, ‘미국이 위성을 대신 쏴 주면 개발을 안하겠다’는 로켓은 우주개발용으로 각각 이해해야 한다는 것.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북의 조건부 미사일 포기설’에 대한 혼란은 이런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성윤(姜聲允)동국대교수는 “김위원장의 미사일 관련 발언은 다분히 미국을 겨냥한 협상용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번 가을 러시아에 갑니다. 푸틴이 간절히 원해서…〓김위원장이 마치 ‘시혜(施惠)’를 베푼 듯한 이런 발언도 비외교적 발언으로 북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인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측에 확인했지만 현재까지 김위원장의 방러 일정에 대해 구체적 협의가 이뤄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직항로문제는 정부내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고 군부가 문제인데…〓현재의 남북관계 진전에 있어 큰 걸림돌이 군(軍)임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 외교부 관계자는 “보수 성향의 군을 어떻게 설득시키느냐가 김위원장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 말 떨어지면 내일이라도 미국과 수교합니다. 미국이 테러국가 고깔을 우리에게 덮어 씌우고 있는데 이것만 벗겨 주면 그냥 수교합니다〓정부 관계자들은 “테러지원국 지정만 해제되면 북―미간에 얽히고 설킨 실타래가 모두 풀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국제정치에 대한 경험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종석(李鍾奭)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위원장이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없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겠느냐”며 “‘내 요구 조건은 이것뿐이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6·25는 열강에 희생된 것입니다. 이제 계산은 그만하고 덮어놓을 것은 덮어놓고…〓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에 대해 누구의 책임이냐를 거론하기보다는 미래를 향한 전향적인 자세로 남북관계를 풀어 가자는 제의를 한 것이라는 해석.
이종석위원은 “이제는 민족의 ‘과거’보다는 ‘미래’를 얘기하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제성호교수는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열강들이 이번에는 ‘통일 지원 세력’이 돼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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