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에서 투신 수익증권 가입고객들에게 상투적으로 하는 당부. 그러나 실제로 펀드 운용내역을 점검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영업창구에서 제공하는 운용내역은 일반인들에겐 ‘암호’를 방불케 할 정도로 전문용어 투성이인 데다 정보도 제한적이기 때문. 투자신탁 공시제도가 예전보다 강화됐다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펀드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하기는 아직도 먼 셈이다.
▽실제로 해보니…〓7월31일 여의도 모 투신사 본점 영업부를 찾아가 하이일드펀드 통장을 내밀고 “운용내역을 보고 싶다”고 요구했다.
작년 11월부터 판매된 하이일드펀드는 투자부적격 회사채(신용등급 BB+이하)를 편입하기 때문에 위험이 높은 펀드. 대신 세금우대 혜택과 공모주청약 메리트가 있다. 신탁재산으로는 당연히 채권과 주식을 주로 사들인다.
7월31일 현재 이 펀드에서 갖고 있는 주식내역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채권내역은 이틀 뒤에야 팩시밀리로 받았다. “운용사에 의뢰해 따로 뽑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
주식내역에는 한국가스공사 48.6%, 아시아나항공 6.9%, 한강구조조정기금 4.4%라는 식으로 종목명과 투자비중이 나타나 있다.
채권내역은 종목명 수량 이율 반영률 발행일 상환일 보증기관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선수(전문가)들’끼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하고 얼마나 운용을 잘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정작 알고 싶은 것들〓주식의 경우 특정종목을 언제, 얼마에 샀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펀드매니저가 주식운용으로 얼마나 이익을 냈는지, 손해를 봤는지 알 방법이 없는 형편.
채권은 더욱 난감하다. 하이일드펀드 후순위채(CBO)펀드 등 투기등급 채권을 사들일 수 있는 펀드의 가입자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회사채의 신용등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고객들은 자신의 펀드가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알 수 없는 것.
해당 투신사 관계자는 “기업상황에 따라 신용등급이 수시로 바뀌는 데다 꼬치꼬치 캐묻는 고객들도 거의 없어 곧바로 자료를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다른 투신사들도 비슷하다. 몇몇 투신사는 ‘투명한 운용’을 강조하며 운용내역을 공개하겠다고 떠들었지만 실제로 고객들이 알고 싶어하는 내용을 제대로 공시하는 곳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펀드공시 강화된다〓현행 법령상 신탁재산 운용보고서, 영업보고서, 사업보고서 등 법정 공시서류 외에 펀드 투신사가 의무적으로 가입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서류는 없다.
극단적으로 ‘편입채권의 신용등급 내역을 보여달라’고 요구해도 투신사에서 줄 수 없다고 잡아떼면 법정에서 다툼을 벌여야 하는 것.
그러나 이르면 9월부터는 고객들이 요구할 수 있는 ‘장부서류’가 증권투자신탁업 감독규정에 명시된다.
금융감독원은 △신탁재산으로 사들인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 내역 △펀드의 재무제표와 그 세부내역은 물론 △유가증권 매매거래 내역서까지 공개하도록 할 계획이다. 다만 지나치게 세부적인 매매내역서와 투신사 내부서류인 ‘운용지시서’는 투신사가 정당한 이유를 대 공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할 방침.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에서와 같이 고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한 문제로 자료를 만들어 내놓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꼭 알아야 할 가입자 권리▼
제 아무리 법이 잘 정비돼 있어도 투신 고객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헛일이다. 증권투자신탁업법 및 세부법령이 보장하는 수익증권 가입자의 권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본다.
①간이투자신탁 설명서〓일선 창구에서 펀드를 고를 때 필수적인 자료. 금융감독원은 이해하기 힘든 상품약관이나 두꺼운 투자신탁 설명서 외에 1∼2장짜리 간이설명서를 비치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투자판단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돼 있다.
②상품설명 요구〓상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만약 설명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펀드에 가입했다가 분쟁이 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충분한 설명을 했는지에 대한 입증책임(증거를 대야 할 책임)은 판매사쪽에 있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선 녹취를 하거나 메모를 하는 것도 좋다.
③신탁재산 운용보고서〓투신사는 최소한 6개월에 한 번씩은 수익증권의 기준가격이나 손익상황, 신탁재산 내역, 매매내역 등을 고객들에게 알려야 한다. 주식회사가 반기(半期)보고서를 주주들에게 통지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④영업보고서·사업보고서〓영업보고서는 분기(3개월)마다, 사업보고서는 1년마다 작성해 금감원과 투자신탁협회에 비치, 공시해야 한다. 고객들은 금감원이나 투신협회를 직접 방문, 열람하거나 인터넷(www.fss.or.kr 또는 www.kitca.or.kr)으로도 운용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⑤신탁재산 외부감사보고서〓일정규모 이상의 회사가 독립된 외부감사인에 의해 감사를 받아야 하듯 펀드도 외부감사를 받아 보고서를 작성한다. 외부감사보고서 역시 금감원과 투신협회에 공시한다. 가입 영업점에서도 열람할 수 있다.
⑥펀드간 운용실적 비교공시〓투신협회는 이밖에 모든 펀드의 운용실적을 회사별, 펀드별로 비교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우도록 돼있다.
⑦장부서류 열람 요구권〓가장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가입자의 권리. 가입펀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적극적으로 유가증권 매매거래 내역서 등 장부를 보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회사측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열람 또는 복사를 허용해야 한다. 예컨대 러시아채권 또는 대우채권 편입 등을 따질 때의 근거.
금감원 자산운용감독국 김은집책임은 “이같은 수익자의 권리는 고객의 권익보호 뿐 아니라, 길게 볼 때는 투신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챙겨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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