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메모]심의 가위질 속에도 광고는 진화한다

  • 입력 2000년 8월 15일 20시 10분


광고는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광고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광고 산업의 규모 변화와 기술적인 진보도 놀랍지만 표현 방법도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광고는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경계와 감시를 받아왔다. 광고 표현의 변화는 ‘광고 심의’와의 투쟁을 통한 ‘정반합’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TV광고에 나오는 남북 병사들의 대치 장면도 수 년 전에는 광고 심의에 앞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지 먼저 알아봐야 하는 심각한 소재였다. 새 정부들어 꾸준히 추진되고 있는 ‘햇볕 정책’과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된 것은 행운이었다.

97년 SK㈜의 엔크린 광고에서 잠깐동안 북한의 거리와 경찰의 모습을 재현한 장면이 있었는데 이것도 통일부에 승인을 얻어야만 했다. 남북이 대치하는 장면은 제작진에게는 도박과 같은 일이었다.

영화 ‘거짓말’ ‘여인’ 등에서 파격적인 노출 장면이 허용돼 화제가 됐지만 광고에선 아직도 키스신 이상은 심의에 저촉된다. 그나마 몇 년 전에는 키스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카페라떼 광고처럼 여자가 리드하는 반(反)유교적인 키스 장면도 허용되는 추세다.

심의규정의 변화는 “언제부터 키스 장면까지는 허용하자”는 명확한 협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회적 통념과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 자연스럽게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광고 심의는 그동안 ‘얄팍한 상술로 자행되는 영상 테러’를 막아 국민의 정신 건강을 보존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와 시대 정신을 담아내려던 다수의 건전한 광고인들의 사기를 꺾었던 전력도 갖고 있다.

광고도 하나의 문화현상이고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다. 방송도 광고도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게 아니라 건전한 시민단체와 양식있는 국민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 성 혁 (제일기획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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