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선 생사확인 서두르자

  • 입력 2000년 8월 17일 19시 06분


50년을 기다려 이루어진 만남치곤 너무 짧았다. 서울과 평양에서 몽매에도 못 잊던 핏줄을 만나 반세기 생이별의 한을 푼 이산가족 상봉단이 오늘 각각 남과 북으로 돌아간다. 가슴에 응어리진 한과 설움을 3박4일 짧은 상봉에 묻어 저미는 추억으로 남겨두고 그들은 다시 기약 없는 재회의 날을 손꼽으며 헤어져 살아야 한다.

“바닷물을 먹물 삼아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 이 사연 풀어낸들 어찌 다 옮길 수 있으리….” 이번에 못 만난 북의 자식에게 남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 구절처럼 이산가족들은 또 수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지구상 어디에 이처럼 절절한 비원(悲願)을 민족 모두가 안고 사는 경우가 있는가. 이념과 체제의 희생이라고만 하기에는 지나온 세월이 야속하고 그 아픔이 너무나 크다.

이제는 민족의 상처를 하루속히 치유하는 데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나서야 한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으로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정치도, 그 무엇도 진한 핏줄의 연을 끊을 수 없다는 당위를 확인했다. 떨어져 살아도 보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소식을 전하고 싶으면 편지든 전화든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함을 깨달았다.

자유상봉과 자유왕래,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주거 선택은 이제 남북당국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번 3박4일의 서울 평양 교차방문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그런 바탕에서 남북이 진지하게 논의해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헤어진 혈육의 생사확인작업이 빠르게, 쉼 없이 이뤄져야 하며 고령의 이산가족이 더 늦기 전에 만날 수 있도록 면회소를 조속히 설치해야 한다.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듯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에게도 가족상봉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자유의사에 따른 재결합도 검토해야 한다. 민족이 하나가 되어 화해하며 인도주의를 실현하려면 지난 시대의 대결논리에 젖은 억지는 버려야 한다. 그런 가운데 신뢰를 쌓고 궁극적으로 평화와 민족번영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의 감격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거기에 매달려 남북이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수많은 과제를 감성적으로 대해서도 안 된다. 곧 시작될 평양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는 냉철하게 민족의 앞날과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하며 다시는 반세기 전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슬기를 모아야 한다. 또 만나도 헤어지지 않는 그 날을 앞당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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