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도 30년 넘게 금융계에 몸담아오면서 항상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좌우명은 스스로 겪었던 특별한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외환은행 행원으로서 마침 학술연수의 기회를 얻어 서독의 튀빙겐대학에 유학을 하게 되었다.
당시 서독은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이면서도 2차대전의 폐허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 낸 경제대국으로서, 경제개발을 지향하는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터였다. 나에게는 경제학 공부도 중요하였지만 그렇게 짧은 기간에 경제적 기적을 이룩한 게르만 민족의 저력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그런 부분에 대한 관심도 컸다.
학교에 입학하자 곧 기숙사를 배정받았는데, 지하에 공동으로 빨래를 할 수 있도록 세탁기가 5대 놓여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지 두어달 되었을까. 묘한 마음의 갈등이 생겼다. 빨래는 보통 일주일치를 모았다 주말에 한번씩 세탁기를 돌리곤 했는데 한번 사용료가 2마르크였다. 세탁기는 동전을 투입해야 돌아가는 자동식이 아니고 사용하는 사람이 2마르크짜리 동전을 넣을 수 있도록 세탁기 위에 빈 맥주 깡통을 하나 놓아둔 것이 고작이었다.
빨래를 하러 가보면 깡통마다 동전이 수북했다. 어떤 때에는 큰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바꿨는지 50마르크나 100마르크짜리 같은 고액 지폐도 있었다. 지키는 사람도 없는데 돈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였다. 관리를 그렇게 엉성하게 하는 독일 사람들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요령을 부려보았다. 공짜 빨래를 한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을 수 밖에 없었다.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기는 했지만 요령의 묘미를 새삼 터득하면서 그 후로 세탁은 으레 공짜가 되어버렸다.
다시 서너달이 지났을까. 나는 빨래 때문에 다시 한번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가슴을 졸이면서 주위를 살피고 남들이 모두 잠든 야밤을 틈타 세탁을 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예사롭게 생각했던 공짜 빨래가 이제는 점차 양심의 가책이 되어 가슴속 깊이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순간 나는 독일 사회의 한 단면을 똑똑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전 투입식 자동세탁기 대신 빈 깡통을 놓아둔 이유를 곱씹어보았다. 제멋대로 내버려 두는 것 같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깨닫게 하여 질서를 회복시키는 무서운 힘. 그것이 바로 게르만 민족의 저력임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갑자기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도둑고양이처럼 야음을 틈타 그동안 내지 않았던 세탁기 사용료를 한꺼번에 다 집어 넣었다.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캄캄한 밤하늘의 별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김상철(외환카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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