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딸이 얼마 전 초경을 하게 됐답니다. 마침 잠시 귀국하게 된 친구놈은 외국물을 먹어서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딸 아이가 초경을 하던 그 날 호텔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파티까지 열어줬답니다.
◇초경 축하파티
말하자면 초경 축하파티였지요. 일찌감치 그런게 있고, 그런 현상은 아주 자랑스러운 거라고 교육을 시켜놨다는군요. 그렇게 일찌감치 격려받고 월경을 시작한 딸 아이는 마침내 '오버'하기 시작해 사고를 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무슨 사고냐면 때만 되면, 셔츠 벗어버리 듯 생리대를 벗겨내 집안 여기저기다 벗어던지곤 한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친구놈의 아내는 오늘날 딸 아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것들을 수거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를 듣게 된 친구들은 물론 박장대소, 가가대소 했습니다. 저는 놈한테 초등학교 4학년 아들도 있다는 사실을 퍼뜩 떠올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아들놈 첫몽정하면 그때도 호텔가서 파티 열거라.”
에피소드 하나 더. 초등학교 6학년 때 얘긴데, 같은 동네 살던, 좀 팔푼이 같던, 제 또래 녀석 하나가 “어젯밤 엄마 아빠가 그거 하는 걸 오줌 싸러 일어났다가 얼떨결에 보게 됐는데, 못본 척 하느라 얼른 다시 이불 속에 누워 오줌보가 터지는 줄 알았다”는 고생담이었습니다.(그러고보니, 그 정도 센스가 있었으니 절대 팔푼이가 아니로군요.)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면, 저는 지금 66년 4월21일자(359호) '의사신문'(지금도 이 신문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에 실린 한편의 글을 읽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인 이희영이란 분이 학술면에 기고한 컬럼이군요.
◇반창고로 질을 막다
(전략)
사춘기의 성대의 변화를 가정의학사전 같은데서 선천적 매독 때문이라고 선고받고 자살을 기도한 소년이나 초경을 어떤 상처에서 출현한다고 믿고 반창고를 부쳐 질을 막았다는 따위의 소녀에 대한 성교육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중략)
또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평화로운 가정에서 자란 사람보다 더많이 자위를 하게 된다.(중략)
행복한 가정을 갖는데 있어 우리는 침실에 관한 인식을 새로히 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의 침실은 인생의 3분의1을 지내는 중요한 안식처이나 이 침실의 개선에 대한 노력은 너무나 소홀한 것 같다.
우리의 현재의 침실에서 성생활을 이룬다는 것은 마치 소매치기를 하다싶이 조심스럽게 해야 할 정도로 너무나 빈약하다. 따라서 최소한 침실에 잠을쇠를 잠그거나, '커텐'이라도 쳐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선거 때와 성교 때는 본인들이 극도로 그 일에 열중하게 되기 때문에 곁에서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수가 있다. 무더운 여름밤에도 부부관계 때는 아내에게 이불을 뒤집어 쓰게 하는 한 남편이 있었는데 그는 어렸을 때에 부모가 그 행동에 열중하고 있는 그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성의 해방이란 성적 민주화이며 성에 관한 올바른 교육을 거쳐서 비로소....(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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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요즘 위의 컬럼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런 소년소녀가 있다면 아마 부모들은 정신병원으로 데려갈 겁니다.
오늘은 중언부언 안할랍니다. 초경이니, 자위니 등에 대해 다들 `한유식'들 하잖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다만 자위에 관한 명언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고 끝내기로 하지요.
`자위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호머)
`외로울 때, 나이가 들었을 때, 발기부전에 빠졌을 때는 자위가 친구가 되어준다.'(시저)
`자위는 창조력의 어머니.'(프랭클린)
`이런 자기애(자위)는 고상한 것.'(미켈란젤로)
늘보<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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