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9월부터 녹색연합 생태간사라는 직함을 가지게 된 조태경(29)씨.
일년 중 150여일은 산에 있는 '산(山)사람'이다.
거무스름한 피부에 가만히 있으면 조금 무서운 인상. 하지만 그와 1분만 얘기를 나눠보면 이내 그 소탈하고 편안한 모습에 폭 빠져들게 된다.
녹색연합에서 그가 담당하고 있는 일은 그때그때 터지는 환경문제를 쫓아다니며 대응하는 것. 지금은 경북 울진군 왕피천 일대의 온천개발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로 뛰고 있다.
그를 만난 곳도 무분별한 온천개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토론회장이었다.
“어떤 환경문제든지 단순하고 순수하게 다가가는 게 중요해요. 왕피천 한번 가보세요. 가보면 너무 아름다워요. 그러니까 지킬만 한거에요.”
그의 단순하고 짧은 논리가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의미는 그 단순논리 속에 전부 들어있다.
지킬만 하니까 지켜야 한다는 것. 그의 환경운동 신념이다.
“어떻게 녹색연합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냥 흐르는 대로 살다보니까요”
산을 좋아해서 많이 가고 그렇게 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녹색연합에서 일하고 있단다.
그의 처녀등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지리산 기행.
“가출했는데 갈 데가 없어서 지리산에 갔어요. 그때부터 산에 푹 빠졌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는 듯 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추억 속에서 12년 전 까까머리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있는 그를 깨워 백두대간에 다녀온 얘기를 듣고 싶다고 졸랐다.
그러자 어느새 그는 7년 전으로 시간 이동해 있다.
“93년에 처음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했어요. 그런데…그런데… 산이 물이에요.물”
“물이요?”
“산이 물처럼 끊이지 않고 연결돼있어요. 상상이 가세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고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교과서로 배우고 있는 지리개념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산맥체계. 태백산맥 이니 소백산맥 이니 하는 것들 말이다.
“산맥개념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만든 거에요.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한줄기로 이어져있는 백두대간 개념이 전통적인 우리의 지리 개념이죠.”
그는 현재 녹색연합 내‘백두대간 자연환경보호위원회’ 발기를 준비하고 있고, 학생들에게 ‘백두대간’ 개념을 이해 시키기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환경부에서 재정지원을 받아 ‘백두대간 탐사 프로젝트’를 따내 백두대간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그의 꿈이란다.
문득 그가 하고있는 일이 재미 있는지 궁금해졌다.
“너무 재미있어요. 월급 받으며 좋아하는 산에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시민단체 간사 월급이 열악한 것은 다들 아는 사실.
“솔직히 빠듯한 건 사실이에요. 그 때문에 많은 유능한 사람들이 운동을 그만둘 때 제일 안타깝죠.
전 그나마 녹색연합 사무실에서 자는 때가 많고 (주위 녹색연합 동료들을 슬쩍 쳐다보고 웃으며) 밥은 다들 잘 사주니까 생활비는 그나마 덜 드는 편이죠.”
그에 대해 들은 바 있어 ‘퍼포먼스’를 즐겨 하냐고 물어보니 자칭 ‘퍼포먼스의 왕자’란다.
그러자 주위 동료들이 야유하며 그게 아니라 ‘오버맨’ 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제가 집회 때 플래카드를 카메라를 향해 불쑥 내미는 등 좀 오버하죠.”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아니 ‘돌출행동’을 하나 꼽으라고 부탁하니 그는 지난 총선 때 일을 얘기했다.
“그때 종로 한 빌딩 옥상에서 암벽타기해서 내려와 총선시민연대 플래카드를 걸었던 적이 있어요. 그게 기억에 남네요. 가장 재밌었구요”
그는 현재 녹색연합 산악회 모임인 ‘녹색친구들’운영도 맡고 있다. ‘녹색친구들’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을 함께 답사하며 환경보전운동의 방향을 논의하는 모임.
그의 ‘녹색친구들’에 대한 열정은 뜨겁다. 올 해 4월 10여명이 발기했는데 벌써 회원이 70여명에 이를 정도.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연히 환경을 생각하게 돼요.”
시민들이 산에 다니며 환경보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것이 정도라고 말하는 조태경씨.
그의 모습이 웬지 낯설었던 이유를 인터뷰 끝에서야 깨달았다.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목까지 잠근 파란 와이셔츠와 구두때문였던 것.
늘어진 티셔츠에 두툼한 등산조끼,뒷머리까지 위협하는 큰 배낭,단단히 묶인 등산화...그를 보면 연상되는 것들이다.
“다음엔 산행 인터뷰나 할까요?”
산, 아니 등산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필자지만 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을 산에 가고프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희정/동아닷컴기자 huibo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