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시 불법입간판 시민안전 '점령'

  • 입력 2000년 8월 22일 18시 29분


며칠 전 저녁 친구를 만나러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뒤의 골목을 지나던 회사원 조모씨(34)는 갑자기 발에 뭔가 걸려 길바닥에 넘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인근 주점에서 도로에 세워둔 입간판의 전선이 발목에 감겨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전선의 피복 일부가 벗겨져 있어 자칫 감전사고를 당할 뻔했던 것. 조씨는 “도로 한복판을 차지한 위험천만한 입간판들 때문에 제대로 다니지도 못할 지경”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시내 업소마다 고객유치를 위해 가게 앞 인도에 버젓이 불법 입간판을 세워두는 바람에 인도가 불법 입간판에 ‘점령’당하고 있다. 방치된 불법 입간판들은 거리를 오가는 시민의 불편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감전이나 화재 등 각종 사고의 위험마저 낳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 불법 입간판은 수 십 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설치건수도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 관계공무원들의 전언이다. 서울시의 단속실적을 살펴보면 97년 4만여 건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 9만여 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서울시내 각 구청의 단속인력은 모두 120여명에 불과해 턱없이 모자란다. 특히 현행 옥외광고물 관리법상 수거해 온 입간판은 각 구청의 창고에 ‘곱게’ 보관했다가 업주가 반환을 요구할 경우 그대로 돌려줄 수밖에 없다. 또 불법 입간판을 수거하려다 사전에 눈치 챈 업소가 입간판을 냉큼 가게 안으로 들여놓고 버티는 바람에 단속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구청 관계자는 “같은 업소가 몇 번을 위반하더라도 ‘가중 처벌조항’이 없어 ‘수거―반환’의 과정만 되풀이 돼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며 “일부는 수거과정에서 간판이 상했다고 구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편 올 4월 서울시는 도시미관을 해치고 통행에 불편을 주는 ‘불법 입간판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수거와 동시에 폐기처분이 가능하도록 정부에 관련법의 개정을 요구해놓고 있다. 길기석 서울시 건축지도과장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와 월드컵대회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도시미관을 저해하고 시민불편을 초래하는 불법 입간판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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