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어 나타난 주인공을 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 보니 노래는 커녕 입을 크게 벌리며 벙굿벙긋 연기만 하는 것이었다. 무대 한 켠에는 양복을 입은 다른 테너가 서서, 로엔그린의 입에 맞추어 전곡을 완벽하게 불러내는 것이 아닌가? 테너 롤란드 바겐퓌러의 목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 빚어진 이 기상천외한 장면은 금년 바이로이트의 일대 스캔들이었다.
바그너 악극의 세계로 오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관객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5년씩 대기하여 힘들게 티켓을 구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도 끝이 아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200㎞ 이상을 달려 바이에른 주의 구석에 있는 바이로이트에 닿는다. 평소에는 한적한 도시지만 8월만 되면 10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깨끗하고 고즈넉한 시가를 내려다 보는 언덕 위의 정결한 잔디 밭에, 거대하지만 외모는 소박한 ‘축제극장’이 125년째 반듯이 서 있다. 후대에 가장 많은 영향과 논란을 남긴 음악가 바그너가 직접 세운 이 전당은,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그의 악극만을 상연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곳을 일단 방문하면 오로지 바그너를 듣기 위해 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공연은 매일 오후 4시에 시작되는데, 그의 악극들은 길뿐더러 막 사이마다 1시간의 휴식이 있어 공연은 거의 11시가 지나서 끝난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6여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열렬한 음악팬으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감동을 위한 고통과 인내 역시 바그너의 계산인 듯, 관객들은 모두 한 모금의 감로주를 마시기 위한 고행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다. 땀이 흥건한 8월의 날씨에 검은 정장을 하고 불편한 자리에서 듣는 바이로이트 사운드는 분명 시원한 거실 소파에서 듣는 바그너와는 다른 경험이다. 특히 연주시간만 무려 16시간으로 4일간에 걸쳐 공연되는 ‘니벨룽의 반지’는 이 페스티벌의 상징적인 작품이다.
금년은 페스티벌의 제3세기를 맞이하여, 현재 인기 정상의 이탈리아 출신의 두 지휘자 주제페 시노폴리(반지)와 안토니오 파파노(로엔그린)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필립 강, 연광철, 아틸라 전 등 세사람의 한국인 베이스도 솔리스트로 출연중이다.
―끝―
박종호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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