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먹거리 두려움

  • 입력 2000년 8월 24일 20시 08분


국정이 문란하던 고려시대 말기에 괴이한 짐승 불가사리가 나왔다. 몸은 곰을 닮았고, 코는 코끼리, 눈은 코뿔소와 비슷한 불가사리는 쇠를 집어삼키고 점점 커져서 세상을 소란케 했다. 조선시대 후기에 나온 것으로 짐작되는 소설 불가살이전(不可殺爾傳)의 이야기이다. 지나친 비약일 듯 싶지만 요즘 우리의 위장을 불가사리의 위장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꽃게에 납덩이, 고춧가루에 쇳가루를 넣어 파는 악덕업자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상력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물을 먹인 아귀나 복어는 차라리 애교 수준이다. 뱃속에 돌이 든 홍어와 모래가 든 조기를 먹으라는 것이다. 그뿐인가. 발암물질인 디하이드로초산이 든 묵, 옥수수기름과 황산이 포함된 참기름, 금지된 살충제가 든 인삼도 ‘모르는 게 약’이니 그냥 들라는 것이다. 농약 콩나물 및 오염지하수 두부 등 ‘겁나는 식품’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들이지만 악덕업자들의 새로운 개발품(?)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입맛이 떨어지는 얘기는 업자의 돈 욕심에서 비롯된다. 꽃게나 홍어 등 수산물에 이물질을 넣고 급속 냉동하는 방법으로 무게를 늘려 수입하면 그만큼 이득이 되고, 불량식품을 만들면 유통기간이 늘어나 돈이 더 벌린다는 것인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수산물 수입업자 중에는 ‘현지 업자가 그랬을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고 한다. 여하튼 수산물 검사가 처음에만 무작위 표본 정밀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검역 체계의 허점을 악용했을 게 뻔하다.

▷국산품이든 농수산물의 안전도를 믿을 수 없다 해서 우리 모두가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히 당국은 수입식품의 검역과 국내에 유통되는 식품의 안전검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올해 수입 수산물 31만여t중 1300여t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이미 유통된 불량품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악덕업자들의 불량품 수입으로 많은 상인들이 부도 등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시민의 ‘식품 공포증’을 해소하는 일이다. 먹는 즐거움을 잃으면 살맛도 잃게 되지 않겠는가.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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