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고자질과 준법

  • 입력 2000년 8월 25일 18시 39분


법 집행의 본질은 사람들이 스스로 제도를 따르도록 만드는 일일 것이다. 국민이 법으로 규정된 기준이나 절차를 잘 지키도록 설명하고, 법이나 제도에 그대로 지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국민의 편에서 그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법 집행자의 임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여전히 적발과 처벌 위협이 곧 법 집행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특히 교통 분야에선 아직도 그런 인식이 일반적이다. 경찰의 함정 단속이 사라지지 않고 있고 위반한 사람들도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재수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차량 소통을 돕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단속이 아니라 실적 위주의 이른바 함정 단속에 대해선 법원도 책임을 물은 일이 있다. 서울지법은 1997년 5월 ‘잠복 단속이 교통사고의 원인이 된 경우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례를 남겼다. 그런데도 경찰의 함정 단속은 여전하다. 지난해 교통의경 출신의 한 시민은 서울시내에만 상습 함정 단속 지점이 250여군데에 이른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경찰청장도 일선 경찰의 ‘딱지 할당’ 관행을 인정하고 개선을 약속했으나 얼마나 개선됐는지 의문이다.

▷기획예산처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현장 사진을 찍어 고발하는 시민에게 건당 3000원씩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 등의 사진을 찍어 경찰에 고발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의 단속만으로는 교통질서를 바로잡기 어렵기 때문에 시민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논리다. 기획예산처는 이미 예산 배정까지 약속했고 이에 따라 경찰청은 세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2002년 월드컵 축구 등을 앞두고 교통질서를 확립하는 일이 국가적 과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다. 신고보상금제는 한마디로 고자질을 부추겨 국민을 이간시키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 길목에 숨어서 사진을 찍는 또 다른 ‘함정 단속’이 판을 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교통법규 위반자가 모두 단속될 리도 없다. 어차피 걸린 사람만 재수가 없는 것이다. 교통질서 문제는 국민의 자존심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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