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는 집을 사고 파는 것이 “데이트와 아주 흡사하다”면서 “감정적으로 몰두해서 백일몽을 꾸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며 전화기 근처에서 서성이는 것이 똑같다”고 말한다.
가버는 또한 부동산 광고에 쓰이는 단어들도 “추파를 던지는 듯 유혹적”이라면서 구매자들도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을 때 그 집을 “다시 한 번 보고싶다”고 말하는 등 마치 데이트 상대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가버의 새 책 ‘섹스와 부동산’의 내용 중 일부이다. 그러나 이 재미있는 내용은 이 책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섹스와 부동산’은 실제로는 집이 우리의 문화적 상상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으로서 섹스나 부동산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이 책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위톨드 라이브친스키의 책 ‘집: 아이디어의 짧은 역사’(1986)가 다뤘던 내용들을 대부분 다루고 있지만, 일관성과 매력이 상당히 부족하다.
이 책에는 또한 가버가 1992년에 내놓은 남장여자, 여장남자에 대한 연구서 ‘옷을 입은 흥미: 옷 바꿔입기와 문화적 불안감’에 비해 설득력과 사회학적 깊이가 부족하다.
‘섹스와 부동산’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가 독자에게 친숙하다는 점, 자세한 사회적 관찰결과가 들어있다는 점 등이다. 가버는 사람들이 집을 성공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현상이 도널드 트럼프나 빌 게이츠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처럼 오래 전에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버의 주장에 따르면, 윌리엄 딘 하월스의 소설 ‘사일러스 라팜의 성공’은 딸들을 좋은 곳에 결혼시키기 위해 비싼 집을 지을 계획을 세우는 보스턴의 사업가를 묘사하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 역시 ‘문화적 욕망의 상징으로 그 지방 특유의 건축양식을 묘사하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가버가 사회적 관찰에서 철학적 사색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섹스와 부동산’은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집을 어머니의 자궁이나 우리의 몸, 혹은 영혼의 그릇을 상징하는 은유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모호함과 잘난 척 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학자적인 잘난 체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 길고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은 가버의 주장을 독자들에게 밝혀주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아니 가버의 주장 중 재미있고 정당한 부분까지 오히려 가려버린다고 할 수 있다.
(http://www.nytimes.com/library/books/080400garber―book―review.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