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서태지 귀국현장 취재기

  • 입력 2000년 8월 29일 22시 08분


4년7개월만에 서태지가 귀국한 8월29일은 팬들에겐 '뜨겁고 짧았던' 날이었지만 취재 기자들에겐 긴장된 하루이었다.

이날 동아닷컴 인터넷 취재본부에는 오전부터 서태지 귀국에 관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정말 얼굴을 보이기는 하는지' '공항에서 인사를 나눌 수는 있는 것인지'를 묻는 팬들의 목소리는 애절하기까지 했다.

오전 10시30분. 기자의 컴퓨터엔 따끈따끈한 이메일이 한 통 배달됐다. 미국 LA 현지에서 익명의 독자가 보낸 것이었다. 이메일 속엔 LA를 떠나는 서태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 광경을 지켜본 소감이 담겨 있었다.<관련기사 참조>

사진 속의 서태지는 머리를 어깨까지 길렀고, 검정색 뿔테 안경에 간편한 옷차림이었다. 활동 당시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은 그동안 떠돌던 비만설이 낭설이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서태지의 귀국 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5호선 김포공항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25분. 지하철문이 열리자마자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인간띠'를 이루며 제1청사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서태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제1청사에 몰려든 인파는 줄잡아 3000여명. 오전 6시부터 로비에 자리를 잡은 서태지 팬들은 노란 손수건과 태극기를 흔들며 '난 알아요' '교실 이데아' '시대유감' 등을 합창했다는 게 공항측의 전언.

오후 2시부터 기다렸다는 문종성 군(20, 건국대 1)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서태지의 새로운 음악을 4년 가까이 기다려왔다"면서 "가요계에 충격을 던져주는 음악을 발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항에도 비상이 걸렸다. 팬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제1청사에는 전경 5개 중대를 포함, 1000여명의 경찰과 20여명의 사설 경호팀 'TRI'가 배치됐다.

오후 6시20분경 아시아나 201편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한 서태지는 간단한 입국 심사를 거쳐 6시58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는 서태지의 눈에는 눈물이 엷게 맺혀 있었다.

10초나 흘렀을까. 예정된 출구의 반대편에서 그가 나타나자 포토 라인이 무너졌고 서태지는 경호팀에 휩싸여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100여명의 취재진은 청사 밖에 마련된 흰색 벤 승용차로 몰려가 서태지를 기다렸지만 끝내 그는 입구로 나오지 않았다.

오후 7시13분. 서태지는 비밀통로를 통해 경호 팀의 소나타 승용차를 타고 숙소인 신라호텔로 향했다. 서태지가 떠난 뒤에도 2000여명의 팬들은 "아직도 태지 오빠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울부짖으며 8시가 넘도록 공항 로비를 떠나지 않았다.

서태지의 한 측근은 "양군 기획에서 인파가 너무 많아 나가지 말 것을 종용했지만 서태지가 팬들에게 얼굴을 보이고 싶다고 주장해 잠시나마 얼굴을 내비친 것"이라며 "서태지 자신이 짧은 만남을 무척이나 서운해했다"고 귀뜸했다.

팬들에겐 아쉬움이 남았던 재회였지만 취재기자들에게 그것은 서태지 취재 전쟁의 제2라운드 서곡이었다.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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