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서태지

  • 입력 2000년 8월 30일 18시 35분


TV방송국이나 녹화장 주변에 떼지어 몰려다니는 10대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다. 분명 학생들인 것 같은데 수업은 어떻게 하고 녹화장에 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또 조용히 관람해도 좋을 텐데 왜 꼭 ‘괴성’을 질러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에 대해 보다 밑바닥에 깔린 감정을 고백하자면 마치 먼 나라에서 온 사람을 보는 듯한 ‘이질감’이다.

▷가수 서태지가 입국하던 날에도 10대들이 공항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날도 학교 수업을 빼먹고 몇 시간 전부터 입국장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린 아이들도 있었고 함성소리 또한 콘서트 현장처럼 요란했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보면서 정작 관심은 10대들보다는 서태지에게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서태지가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이처럼 열광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서태지는 96년1월 은퇴를 선언했다. 더 이상 노래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이유였다. 그 후 4년7개월이 흘렀다. 가수의 평균 수명은 3개월이라고 한다. 얼굴을 알만 하면 어느새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런 현실이라면 그는 벌써 오래 전에 ‘잊혀진 가수’여야 했다. 그러나 서태지는 달랐다. 귀국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은퇴 전보다도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더 집중되고 있다.

▷서태지의 음악적 성과는 다른 가수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눈부시다. 90년대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그가 돋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인기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은퇴 당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최고의 위치에서 어느 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떠난 것이다. 팬들은 이런 ‘아름다운 퇴장’에 아쉬움과 함께 열광의 박수를 보냈다. 그의 이번 가수활동 재개가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눈을 돌려보자. 우리 사회에는 내세울 만한 ‘인물’들이 별로 없다. 온통 상처투성이의 사람들 뿐이다. 그래서 신세대는 더 이상 기성세대를 존경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서태지같이 10대들이 열광할 수 있는 ‘우상’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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