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깊이듣기]거장 지휘자가 사라진 시대

  • 입력 2000년 8월 30일 19시 12분


레너드 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
최근 미국 내셔널 포스트의 전속 평론가 타마라 번스타인은 ‘위대한 지휘자들은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워너사가 출시한 비디오 ‘지휘의 예술’을 보고 나서 칼럼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지휘의 예술’은 기자도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물이다. 브루노 발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등 과거 유명 지휘자들의 공연 및 연습장면, 살아있는 지인들의 회상 등을 담고 있다. 그런데 타마라 번스타인의 말인즉 이 비디오를 보고 나니 오늘날 이들에 필적할만한 지휘계의 거장이 나타나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현역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사이먼 래틀 등은 좋은 지휘자일지언정 위대한 지휘자는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위대성' 사라져 버린걸까?

기자도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80년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나 레너드 번스타인의 사진은 소피 마르소나 피비 케이츠의 사진과 함께 청춘 남녀들의 공부방에 걸렸다. 혹 그들이 별로 음악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 보통 사람의 의식 속에 침투해 있는 지휘자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이나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의 사진은 여전히 일반인에게 매력을 발휘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정말로 지휘자들의 ‘위대성’은 사라져 버린 걸까.

기자는 타마라 번스타인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CD시대 이후 점차 분명해지고 있는 관현악 연주의 ‘기능주의’, 또한 연주의 주관주의에 대한 객관주의의 우위이다.

오디오세트가 들려주는 사운드가 극히 정밀해짐에 따라 디지털시대 이후의 녹음은 사소한 앙상블의 흐트러짐 하나를 용납하지 않게 되었다. ‘옛 음악은 옛 방식대로 연주한다’는 원전연주가 유행하면서 현대악기 연주에 있어서도 지휘자의 강렬한 자기주장 보다는 균형과 정밀함이 우월한 가치로 등장하게 됐다.

◇시대의 흐름 탓 아닐는지

자기 스타일이 분명했던 레너드 번스타인이나 헤르베르트 폰 카랴얀이 오늘날 얼굴을 감추고 돌아온다면 얼마나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청중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원맨쇼를 한다’는 비난을 듣지는 않을지. ‘멋대로 템포’와 ‘맘대로 강약’을 즐겨 구사하는 로린 마젤이 60년대 기린아로 떠올랐다가 오늘날 한풀 꺾인 것이나, 역시 70년대 강렬한 자기주장을 폈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웬만큼 ‘순화’ 된 것도 결국 시대의 흐름 탓 아닐까.

기자는 결국 ‘영웅이란 시대의 아이’이며 지휘계 영웅 역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오늘날의 지휘자들에게도 이전 시대의 지휘자에게 없는 다른 종류의 위대성이 있으며, 객관적인 평가는 또다른 한 세대가 흘러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기자는 믿는다.

타마라 번스타인,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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