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 배경 :
110선 돌파를 위협하던 엔/달러 환율이 106엔선으로 하락하고 유가 고공행진에 따른 물가부담이 있는 상태에서 월간 무역수지가 향후 10억달러선의 흑자기조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원화강세 전망이 대두됐다.
또한 월말 및 추석전 네고장세가 이어지면서 120억달러를 상회하는 거주자외화예금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외국인의 직접투자자금(FDI)이 꾸준히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도 수급측면에서 원화절상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번 1110원 붕괴는 수급 및 제반 외부환경보다도 외환딜러들의 단체행동에 기인했다는 분석이 강하다.
▽외환딜러들의 “사보타지”
외환딜러들은 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정체국면을 이끈 것으로 판단, 당국에 대한 항의표시로 24일부터 투기거래를 자제키로 담합했다.
급기야 25일 체결된 현물환 거래량(금융결제원 기준)이 97년12월 변동환율제 도입이후 최저치로 떨어졌으며, 이와 같은 상황이 ‘외환딜러 파업’ 또는 ‘딜러 사보타지’ 등의 내용으로 일간신문에까지 기사화되자 당국도 부담을 느끼면서 잠시 시장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좀더 설득력을 갖는다.
정부당국은 외환시장 내부사정이 외부로까지 확산된 것에 대해 진노하고 결국 한국은행이 외환시장협의회원인 은행권 부장을 소환해 경고 및 징계조치를 내림으로써 이번 사태는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
▽외환당국 개입 재개
외환시장이 이러한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30일 환율이 1108원대로 하락하자 재경부는 또다시 ‘현 상황에서 원화절상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구두개입에 나섰다. 한국은행도 달러매수 직접개입을 단행하면서 환율추가하락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외환딜러들의 집단행동은 한달 가까이 유지되던 1113원 지지선을 붕괴시킨데 이어 1110원마저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으나 기껏 5원의 하락에 만족했을뿐 외환시장은 또다시 외환당국이 시장참여자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예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게 됐다.
▽외국인의 현선물 투매로 상황 변화 조짐
물론 31일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투매하기 시작하는 등 현선물 동시매도에 나서면서 주식시장 전망을 악화시켰고 순매도행진이 지속될 경우 환전수요가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공급우위 수급상황에 변화가 있을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철수하지 않는한 환율하락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주식매매동향을 제외할 경우 시장수급은 여전히 공급우위에서 벗어날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개입
외환당국은 외국인이 주식매도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연중저점(1104원) 붕괴를 방어할 태세였다. 30일의 개입은 월말네고장세에서 환율추가하락을 막겠다는 첫번째 의사표현이었으며 무역수지 흑자기조 구축을 위해 추가적으로 개입에 나서겠다는 태도에서 한발짝도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외환당국은 그동안의 일방적인 공급우위속에서 원화절상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개입을 단행해왔으며, 외환보유액이 1천억달러(은행권 수탁금 포함)를 돌파하자 공기업을 동원하고 은행권의 외채비율규정을 강화하면서 의도적인 매수세를 양산해왔다.
외환당국은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될 경우 또다시 IMF와 같은 위기상황이 닥칠수 있다고 우려하에 연간 100억달러의 흑자기조가 정착되는 선에서 환율을 관리하겠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가격변수가 출렁이지 않도록 세밀한 관리에 나서고 있으며 외환딜러들의 항의사태에서도 봤듯이 외환시장의 내부 사정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계속해서 안정된 흐름을 보이길 바라고 있다.
▽원화절상압력속 횡보세 유지가 당국의 정책목표
외환당국이 가장 바람직한 상황으로 여기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공급우위 수급에 따라 하락(원화절상) 압력을 받되 통제가능한 정도로 수급이 분산되는 것이다.
환율이 1100원 밑으로 하락할 경우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과 외국인의 對韓투자자금 헤지매수세가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환율이 아주 완만한 하락세를 유지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반면 주식시장 붕괴나 기업 및 금융문제로 야기된 환율상승은 또하나의 불안요인으로 해석되면서 악영향을 끼칠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연중저점은 언제 붕괴되나?
결국 기업 및 금융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고 무역수지가 흑자목표를 달성할수 있다면 환율이 시차를 두고 소폭씩 하락하는데 무게중심이 실리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제반요인이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당국의 정책목표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연말 환율이 1100원선 밑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국으로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격변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시킬 것이나 환율하락이라는 대세를 바꾸는 조치는 취하지도 취할수도 없을 것이다.
당국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문제는 현재 정치상황이 예전만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기업 및 금융권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결국 97년과 같은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환율이 언젠가 상승반전할 것이라면 현재 원화저평가 상태를 유지시키면서 흑자규모를 늘리고 향후 환율상승폭을 제한하자는 속셈을 갖고 있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당국의 통제를 벗어날만한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한 환율변동폭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은 낮으며, 바닥이 확인되는 시점까지 환율은 아주 완만한 하락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외환당국은 외환시장이 안정되면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쪽으로 작동해야만 하며, 결코 외환딜러들의 투기판이 되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홍재문<동아닷컴 기자>j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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