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로켓’ 알렉산더 포포프(29·사진)에게 내려진 지상명령이다.
포포프는 92 바르셀로나올림픽과 96애틀랜타올림픽 자유형 50m와 100m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러시아의 영웅’.
포포프 이전의 올림픽 연패 기록은 1924년 파리, 28년 암스테르담올림픽에서 자유형 100m와 계영 800m의 일원으로 2연패를 달성한 조니 와이즈뮬러(미국) 밖에 없다.
와이즈뮬러는 32년 올림픽에도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허리우드의 영화배우로 캐스팅돼 그 유명한 ‘타잔’을 찍느라고 대기록 작성을 포기했다.
8세때부터 수영을 시작한 포포프는 원래는 배영선수.
하지만 19세 때인 90년 ‘명조련사’ 제나디 투레츠키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투레츠키는 신장 2m에 체중 90㎏로 늘씬한 포포프의 주종목을 당장 자유형 단거리로 바꾸었다.
결과는 불과 1년 뒤인 91 유럽선수권 자유형 100m 우승으로 나타났다.
92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미국의 희망’ 매트 비욘디를 누르고 자유형 50m와 100m에서 우승,2관왕에 오르며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93년 거액을 받고 호주팀을 맡은 투레츠키 코치를 따라 호주 캔버라체육연구소로 보금자리를 옮긴 포포프는 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또다시 자유형 50m와 1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신화창조의 길에 나섰다.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애틀랜타올림픽 직후인 96년 8월25일 모스크바에서 수박장수와 시비 끝에 칼에 맞아 폐와 신장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러시아정부는 고급관료만이 출입하는 ‘모스크바 31호 병원’으로 ‘영웅’을 옮겨 3시간동안의 대수술 끝에 살려놓았다.
포포프는 사고 7개월만인 97년 2월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선수생명은 끝이 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포포프는 그해 유럽선수권대회 자유형 50m와 100m에서 또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재기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91년 이래 포포프가 국제대회에서 1등을 놓치기는 98 퍼스 세계선수권대회 자유형 50m에서 빌 필추크(미국)에게 0.14초 뒤져 2위로 들어온 것 뿐.
포포프는 올 6월 17일 러시아하계선수권대회 자유형 50m에서 21초64로 들어와 90년 미국의 톰 재거(21.81)가 가지고 있던 세계신기록을 10년만에 갈아치웠다.
그뿐만이 아니다.포포프는 8월27일 ‘프리올림픽’의 일종으로 벌어진 멜버른그랑프리에서 경쟁자 마이클 클림을 제치고 자유형 100m에서 우승,올림픽 3연패에 더욱 가깝게 다가서 있다.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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