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런 와중에 영감 몸만이라도 성하면 천만다행이겠는데 아이쿠 이번에 정작 놀란 건 마나님이다. 허겁지겁 방안에서 뛰쳐나오느라 맨발 바람으로 쿵쾅거리며 엎어질 듯 영감을 붙들어보려 하지만, 일은 벌써 다 글렀다. 공중에 붕 떠 있는 영감을 어찌 할거나! 도둑고양이는 여유 만만하게 달아나며 용용 죽겠지 하는 양, 긴 꼬리를 얄밉게 휘두르며 영감을 돌아다본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화면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림을 감상하는 이는 작품 이전의 상황부터 이후의 결과까지 마치 영화를 보듯이 모두 일목요연하게 떠올릴 수 있다.
‘들고양이가 병아리 훔치는 그림’인 ‘야묘도추도’의 매력은 이렇듯 난리법석인 흥미로운 일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장장 200년 후 현대인에게까지 그 실감을 전해 준 데 있다. 주제가 요란하다 보니 그림의 구성 요소들도 어디라 초점이 없이 화폭 전체에 널브러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구도가 치밀하기 그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른편 위에서 왼편 아래로 흐르는 시선이다. 뜰의 살구나무 가지도 이 방향으로 뻗었지만 마나님은 영감을 보고, 영감 앞에는 암탉이 있고, 암탉은 다시 고양이를 쫓고, 고양이는 영감을 놀리듯 뒤돌아본다. 떨어지는 탕건조차 이 중심선 위에 놓였다.
화면은 또 마름모꼴로 정돈된다. 네 모서리를 비스듬하게 다듬어, 우상(右上)은 마나님 등, 좌상(左上)은 나뭇가지, 좌하(左下)는 고양이 쫓는 닭, 우하(右下)는 떨어진 자리 틀의 윤곽으로 사선을 그었다. 다시 그림을 십자로 나누면 우상에 툇마루와 방을 네모지게 그렸는데 좌하 역시 사각형으로 정리되었다. 즉 암탉을 중심에 두고 좌상에 고양이, 우상에 탕건, 우하에 병아리 셋, 좌하에 또 병아리 한마리를 펼침으로 해서 가운데 어미 닭의 안쓰런 모정(母情)이 절로 부각되었다.
김득신은 맺힌 데 없이 쓱쓱 그어댄 붓질로 생동감을 살렸다. 특히 잔가지를 바깥에서 안쪽으로 톡톡 쳐 넣어 봄날의 움트는 생명력을 시사한 솜씨가 김홍도와 어금버금하다.
오주석(중앙대 겸임교수)josoh@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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