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책·사람·세상]'통문관'이 많아야 한다

  • 입력 2000년 9월 8일 18시 32분


얼마 전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화제가 됐던 일로, 서울 인사동 고서점 통문관 주인 이겸로 옹이 북한측 방문단의 국어학자 류열 선생에게, 인세 50만원을 50여년만에 극적으로 전해준 일이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통문관은 우리 나라 국학 자료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우리 나라 고서점계의 살아 있는 역사 이겸로 옹을 그저 책방 주인이라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방대하고 귀중한 자료 축적

영국 런던 헤로우 자치구에 있는 동양학 전문서점 Sinobiblia는 전세계 관련 연구자들로부터, ‘찾기 힘든 자료가 있으면 그곳에 물어 보라’는 말을 듣는다. 그곳에서 작성, 배포하는 분야별 동양학 자료 목록은 방대하기도 하거니와, 무척 충실한 서지 정보를 담고 있다. 동양학 연구자료집성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그 목록을 읽다보면 의외의 귀중한 자료와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99년 8월부터 프랑스 파리의 동양학 전문서점 Le phenix(http://perso.wanadoo.fr/librairie.lephenix)와 합병하여 보다 다양한 도서 목록을 발간하고 있는데, 프랑스 자료가 대폭 보완되어 더욱 충실해졌다.

일본 도쿄 치요다(千代田)구 소재 고려서점(http://www.asc―net.or.jp/komabook)은 한국학 관련 학술 자료, 남북한 관계 자료, 한국학 관련 전집, 한국 현대사, 일제 강점기 관련 희귀 자료 등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그 정도로 풍부하게 한국학 관련 자료를 갖춘 전문 서점은 우리 나라에서도 찾기 힘들다.

파리에 있는 Curiosa(http://www.enfer.com)는 에로티시즘 관련 도서 전문서점을 표방하는데, 통속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전통으로서의 에로티시즘 관련 자료를 취급한다. 에로틱 문학, 에로틱 잡지, 일러스트레이션 자료, 에로틱 코믹 등 다양한 종류의 자료를 볼 수 있는데, 이 서점을 향해 ‘예술이냐 외설이냐’ 따위의 오래 된 질문을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수의 대형 서점(인터넷 서점을 포함한)이 시장을 석권하고 소규모 서점들이 속속 문을 닫는 형편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소규모 서점의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약사가 건강 드링크제만 팔아야 한다면 전문적인 약학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듯이, 서점 운영자도 베스트셀러나 잡지만 팔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서에 대한 남다른 감식안이 필요하다. 더구나 전문서점이라면 특정 분야에 대한 남다른 식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전문서점이 정보 인프라

우리 나라에 전문서점이 드문 현실은 각 분야의 전문성, 더 나아가 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른바 지식정보국가의 징표는 ‘모든 국민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을 통해 입수,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의 다양성과 질적 수준’이 관건이다. 각 분야의 전문서점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지식정보국가의 중요한 인프라이자 징표라고 해야 마땅하다.

표정훈(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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