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윌슨 같은 학자는 그의 고전적 명저 ‘외교’(1969년)에서 “외교정책에 대한 책임감은 과거 왕조국가가 민주주의 국가보다 더 강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제군주들은 자신이 체결한 조약에 왕가(王家)의 명예가 걸려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만큼 강했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권이 몇 년 주기로 바뀌기 때문에 조약(정책)의 지속적 이행 여부는 언제나 새로운 정권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윌슨은 보았다.
이런 점에서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경의선 복원 기공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것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이총재의 불참은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화해 포용정책이 앞으로 정권이 바뀔 경우에도 변함 없이 추진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한나라당은 개별 의원들의 기공식 참석을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김으로써 경의선 복원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총재의 참석 여부가 갖는 상징성은 컸다. 그의 참석은 정권 교체 여부에 관계없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지속적으로 이행될 것임을 시사하는 시그널로 읽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총재가 참석했다면 북측 또한 더 안도했을 것이고 그것은 남북관계의 연속성과 일관성에도 크게 보탬이 됐을 것이다. 북측의 기공식에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이총재는 불참을 선택했다. 한나라당은 그 이유로 “국정이 총체적 공백상태이므로 국내문제가 더 급하고, 남북 간에 긴장완화와 안보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대목은 몰라도 긴장완화가 선행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남북 간에 전면적인 긴장완화 조치가 있고 난 후에 기공식이 열린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요구다. 엄밀히 말하면 긴장완화란 경의선 기공식과 같은 크고 작은 행사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뤄지는 것이다.
어쨌든 이총재는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선택’을 더 자주 강요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마다 그가 내린 결정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의 지속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고싶은 얘기는 간단하다. 이총재는 “민주주의 국가의 변덕스러운 유권자들에 의해서 국가의 주요 대외정책이 덩달아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고 했던 윌슨의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도와야 한다. 적어도 대북 화해와 포용의 원칙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같은 이유로 김대통령 또한 이총재의 선택이 갖는 무게와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이총재의 지지야말로 김대통령이 구상하는 대북정책이 정권의 변동에 관계없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확실한 담보이기 때문이다.
이재호<정치부장>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