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부와 의료계는 약사법 재개정 문제를 놓고 여전히 힘겨루기를 하고 이 과정에서 의료계가 휴진투쟁을 되풀이해 분업이 정착되지 못한 실정이다. 그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고 있다.
▼정책혼선에 불편 가중▼
▽약 못구하는 불편은 여전〓회사원 한병수(韓炳洙·45)씨는 최근 폐렴 증세로 대학병원을 찾은 뒤 약 처방을 받았지만 회사 근처의 약국 2, 3곳을 돌아다니다 약을 구하지 못했다. 처방전을 양복 속에 넣어둔 한씨는 사흘 뒤 처방전 유효기간이 지나 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보건복지부의 의약분업비상대책본부에 따르면 분업이 본격시행된 지난달 1일 이후 지금까지 한씨처럼 여러 약국을 돌아다녀도 처방 약을 구하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환자가 분업관련 민원의 16.3%를 차지한다.
▼수가올라 국민부담 늘어▼
분업시행 직후인 지난달 1∼5일 약을 구하지 못한다는 민원이 3분의 1 가량(28%)을 차지하던 때와 비교하면 환자 불편이 상당히 줄어든 셈이지만 의료계―약계가 적극 협력하지 않는 한 이런 불편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간단한 질환을 앓는 환자, 자녀가 아픈 주부, 노약자는 병의원과 약국을 오가는 불편이 훨씬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주부 윤미경(尹美慶·31)씨는 “분업시행 초기 열이 많이 나는 아이를 안고 야간 응급실을 찾았을 때 병원에서 약을 주지 않아 약국을 헤매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주사제를 분업대상에 포함시켰다가 제외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정책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국민부담도 늘었다〓정부는 지난달 10일 진료원가의 80% 수준인 의료보험 수가를 2년 내에 100% 수준으로 현실화하기로 결정하고 이달부터 재진료와 원외처방료를 인상했다.
당정은 이를 위해 다음달과 내년 6월에 의료보험료를 각각 38.5% 올리는 방안을 마련했다. 폐업투쟁을 계속중인 의료계를 달래려는 대책이지만 이런 방안에 대해 국민은 물론 의료계조차도 비판적이다.
전공의비상대책위원회는 “부실기업을 살리는데 수십 조원을 쏟아부은 정부가 국민건강을 위한 데는 국고지원이 인색하다”며 “지역의료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 50% 지원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회사원 전수철(全秀哲·37)씨는 “의료계를 달래려고 정부가 수가인상 등 여러 대책을 내놓지만 폐업사태는 전혀 풀지 못해 시민 입장에서는 호주머니를 털리고 뺨까지 맞는 격”이라고 말했다.
▼약 오남용 감소현상도▼
▽분업효과는 장기적으로 기대〓정부의 준비부족과 의료계 반대 등 여러 요인이 겹쳐 분업으로 국민이 느끼는 불편과 부담은 크지만 폐업사태가 풀리고 분업이 정착되면 긍정적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것으로 정부관계자들은 예상한다.
우선 약품오남용 방지를 통한 국민건강 증진.
보건복지부 안효환(安孝煥)약무식품정책과장은 “아직 정확한 통계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병의원에서 분업 전보다 약을 적게 쓰는 현상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약값마진 때문에 한가지 증세에 대해 불필요하게 6, 7종을 조제하던 종전과 달리 최근에는 3, 4종 이하의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 안과장은 선진국처럼 한가지 증세에 꼭 필요한 성분 1, 2종만 사용하는 관행이 곧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방전이 공개됨에 따라 의사가 무슨 약을 처방했는지를 환자가 정확히 알고 약사가 이를 한번 검증할 수 있게 된 것도 분업의 긍정적 효과로 지적된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