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기관은 ‘세다’는 소리를 듣는다. 미국의 CIA, 옛 소련의 KGB, 영국의 MI6,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의 활동반경은 대단하다. 그 잘 훈련된 요원들의 극적인 활동은 곧잘 영화나 소설의 소재가 된다. 거개의 현대국가가 비슷한 정보기관과 요원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정보기관 후발(後發)국가에서는 정치공작이 말썽이다. 대외정보보다는 정권안보라는 ‘잿밥’에 매달리는 것이다.
▷‘갑자기 당적을 바꾸라니 생각할 시간을 줘야지’(야당의원) ‘이미지를 구기지 않을 타이밍이 필요하다고’(정보부장) ‘돈 문제도 가능한가’ ‘얼마면 되지’ ‘여기 1만달러’ ‘이 정도말고 1만5000이나 2만은 돼야지. 선거운동비라도 건져야 할 게 아닌가’ ‘말만 해, 지금까지 얼마 썼나… 자, 이제 탈당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연결시켜줘’. 페루의 후지모리정권을 궁지로 몬 몰래카메라에 잡힌 내용이다. 몬테시노스 정보부장이라는 정권 10년 동안의 막후 연출자가 최근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방영되었다.
▷유신이 파탄을 맞던 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의 고성이 떠오른다. ‘정보부가 무서운 데가 있어야지. 야당의원 비리도 딱딱 집어내고!’ 그 무서워지라고 닦달당한 정보부장 김재규는 끝내 박대통령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정보정치는 결국 권력을 망치고 나라에도 해악을 끼치고 만다. 1800년대 프랑스의 전설적인 기회주의자 경찰장관 푸셰, 소련의스탈린 시대 비밀경찰국장 베리아, 모두 비슷한 길을 걸었다. 국가 정보기관에 종사하는 위아래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일이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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