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모럴 해저드가 만연한 것은 ‘낙하산’과 ‘회전문’ 인사에서부터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역대 정권들이 자질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부적격 인사들에게 공기업 사장 자리를 전리품 나누어주듯 하다 보니 사장들은 경영 개혁에 힘쓰기보다는 노조 눈치나 보며 무사히 임기를 마치는데만 신경을 쓰게 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화’가 사장 자리에 앉다가 김영삼 정권 때는 ‘등산화’(민주산악회 출신)가 줄줄이 내려왔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와 함께 시작한 국민의 정부는 달라지나 했더니 시간이 흐르며 공기업 사장 자리가 권력 주변의 식객(食客)이나 낙선 낙천자 위무용으로 쓰이고 있다.
퇴직 관료들이 산하 공기업의 장 자리로 밀고들어가는 회전문 인사도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관치 금융시비를 부르는 등 폐해가 크다.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된 국민은행의 경우도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퇴직해 회전문을 밀고들어가 은행장 자리에 앉으니 노조가 반발했고 이를 달래기 위해 162억원을 특별격려금으로 지급한 것이다. 경영자 선정위원회 심사, 공채 등의 형식을 빌려 사장을 임명할 때도 있지만 이것도 알고보면 이미 낙점자를 정해놓은 구색 갖추기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정치적 배려에 의해 임명된 사장들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기 힘들 뿐더러 이곳 저곳 인사를 챙길 곳이 많다보니 늘 접대비를 과다 사용하게 된다. 결국 공기업의 모럴 해저드는 정부권력의 모럴 해저드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기업 노조의 노조패권주의도 문제다. 그러나 이를 과감하게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노조가 낙하산 사장, 회전문 사장 선임 반대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사장을 길들여놓기 때문이다. 노조와 타협해 간신히 취임한 사장이 ‘토착세력’의 저항을 이겨내고 개혁에 나서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공급과잉 상태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만 늘어나는데도 공장을 계속 돌리는 공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은 과감히 청산절차를 밟거나 합병하고 민영화할 기업은 민영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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