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양궁]윤미진, 겁없는 17세 세계를 가르다

  • 입력 2000년 9월 19일 18시 51분


12년만에 재연된 ‘17세의 반란’.

88년 서울올림픽에서 17세의 나이로 양궁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쓸며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김수녕(예천군청·29)은 이제 17세의 후배 윤미진(경기체고)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조용히 물러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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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귀여운 윤미진.

여드름이 아직 얼굴에 듬성듬성 날 정도로 앳된 그는 가수 유승준을 좋아하고 틈날 땐 오락과 수다로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10대’. 특히 1남4녀중 막내답게 꾸밈없고 발랄한 성격을 지녔다.

하긴 꿈 많은 17세 소녀가 어떤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대표팀의 막내로 당연히 부담이 없을 수밖에. 윤미진은 금메달을 딴 뒤 “언니들과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남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뭘 알겠어요. 아마 금메달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겁니다.” 대표팀 오선택코치는 “머릿속이 복잡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쉽게 쉽게 활을 쏜 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10대’ 윤미진은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맞붙은 언니들과의 대결에서 부담없이 활을 쏘았고 바로 이 점이 그를 시상대 맨 꼭대기로 올려놓았다.

반면 철없는 17세의 후배를 상대해야 하는 ‘베테랑’ 김수녕과 김남순은 가슴속에 커다란 짐을 안고 사선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승승장구하던 ‘신궁’ 김수녕은 4강전에서 윤미진과 맞닥뜨리자 ‘독사’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첫 엔드에서 7점짜리를 쐈다는 게 그 증거.

결승 12발중 9발까지 쏴 똑같이 80―80 동점이 됐을 때도 김수녕은 부담감으로 얼굴이 잔뜩 굳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김수녕은 마지막 3발에서 8, 8, 9점으로 부진했고 윤미진은 10발째에 7점을 쏜 뒤에도 나머지 두발은 10점짜리 과녁 정중앙에 꽂아 넣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제 김남순과의 결승전. 11발까지 윤미진은 98점으로 1점 앞서 끝까지 승부를 점치기 힘든 상태. 마지막 엔드에서 김남순은 9점짜리를 쏴 총 106점.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 윤미진은 대담하게도 시위를 당기자마자 막바로 손을 놓았고 쏜살같이 날아간 화살은 9점에 맞아 107―106 꼭 1점차로 대망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한국은 84로스앤젤레스부터 2000시드니까지 개인전 5연속 올림픽 제패라는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다. 5명의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서향순(로스앤젤레스)부터 김수녕(서울) 윤미진(시드니)에 이르기까지 고교생이 3명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드니〓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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