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물리학 공부했지만 글 쓸때 더 큰 행복"

  • 입력 2000년 9월 20일 19시 14분


재미동포 극작가 성 노(34).

영어식 이름은 따로 없다. 그냥 읽는 대로 ‘Sung Rno’라고 쓴다. 명함에는 없지만 성노(誠魯)라는 한자 이름도 있다.

“‘별’이 아니고 ‘진실하고 성실하라’는 의미의 ‘성’이다. 아버지가 이름처럼 살라면서 이 한자를 쓴 것 같다.”

10월10일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성노의 ‘이상(李箱), 열 셋까지 세다(Yi Sang, Counts To Thirteen)’. 031―338―7585

시인 이상과 함께 모국을 찾은 이 ‘코리안 아메리칸’이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선택한 1막은 연극이 아니라 물리학이었다. 88년 하버드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그것은 물리학자인 아버지 노정식씨(미국 신시내티대 교수)의 꿈이기도 했다.

“어머니(한태원씨)는 한국에서 연기와 연극 비평을 공부하다 미국으로 건너와 유학생인 아버지를 만났다. 이런 가계의 영향으로 집에는 항상 아버지의 물리학과 어머니의 연극, 두가지가 있었다. 대학은 아버지의 기대가 있어 물리학을 선택했지만 글쓸 때 더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다.”

브라운대에서 극작 과정을 다시 공부했고 90년대 초반 데뷔작 ‘비오는 클리브랜드’가 로스엔젤리스 이스트웨스트프레이어 극장에서 공연되면서 작가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물리학도에서 극작가로. 180도의 변신처럼 보이지만 그는 크게 다를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연극이나 물리학은 모두 주변의 세계에서 흘러가는 진실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극작가처럼 돈벌이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일로서는 행복하다.(웃음)”

세계적인 실험극 연출가인 리 브루어는 그를 소개하면서 “한국계 극작가가 한국 시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을 모국에서 처음으로 공연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자 묘한 인연”이라고 말했다.

이상은 93년 역시 한국계인 시인 월터 루를 통해 만났다.

“‘오감도’ 등 이상의 시들은 나에게 작품으로 써 달라며 무언가를 계속 말하는 느낌이었다. 자유스럽고 창의적이고. 100번 읽어도 그대로 남는 모호한 느낌. 미스터리 같았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

그는 “누군가 나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는 다면 어쩔 수 없이 ‘I Don’t Know’라고 대답한다”면서 “평생 그럴지도 모르지만 완전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중간’에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24일 방한 예정인 그의 부인 헬렌 염(30)도 경제전문 통신 블룸버그에서 기자로 활동중인 이민 1.5 세대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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